얼마 전부터 배가 아파서 동네 의원을 찾았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하였다.
“복통, 우습게 보고 가만히 놔두면 큰일 납니다. 원인이 수 백개가 넘으니까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응급실로 가세요.”
그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나서 바로 건강진단을 실시하였다. 이후에도 증상이 계속되어 몇몇 병원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에는 대학병원까지 찾게 되었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내 배를 몇 번 눌러보더니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건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찌릿한 긴장감이 내 몸에 퍼지려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입니다. 병원에 오지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사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펑 뚫린 느낌이 드는 걸 보니, 과민성이 맞긴 한가보다.
필자는 조금은 늦은 30대 중반에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후 나를 포함해 동기 노무사 4명과 함께 노무법인을 개업하였다.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공부할 때 몰랐던 개개인의 성향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료 노무사들은 Y노무사를 ‘법 전문 노무사’로 불렀다. 노무사의 업무가 노동법을 기초로 하기에 ‘법 전문’이라는 말이 당연한 것으로 들릴 수 있으나, Y는 노동법 학원의 강사로 활동하면서 법 조문 내용뿐만 아니라, 몇 조 몇 항 인지, 세세한 문구까지 속속들이 외우고 다녔다.
한편, J노무사는 고객과의 첫 상담 시부터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회사에서 퇴직금을 늦게 지급하면, 3000만원의 벌금을 낼 수 있습니다.
면담의 결과는 대부분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우리는 J를 ‘겁 전문 노무사’라고 불렀다. J의 실력이 Y보다 조금 부족할 수도 있으나, 법인의 운영에는 J가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나열한 젊은 의사와 겁 전문 노무사가 왠지 닮아 있는 것 같다. 전문가란 특정분야에서 A~Z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를 문외한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전문가는 고객의 이익을 위해 신의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공인’ 또는 ‘전문’이라는 말에는 자격증 이상의 무거운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이 확대되면서 전문가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현상만 나열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정보를 취합하여 구체적인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균형일터는 일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균열 현상에 대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 놓은 것이다. 노동자 시각에서 볼 때 부족하고 사용자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친 이야기로 비쳐서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흑과 백이 만나면 꼭 회색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존중하면서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