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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리 Jan 20. 2020

자율과 규율 사이

요즘 신생 기업 중에서 자율적인 근무 분위기를 권장하는 기업들이 자주 언론에 소개가 된다.  필자도 10여년 전에 벤처기업인 A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A사에서 일할 때 대기업의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눌렀던 감성이 새록새록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회사가 놀이터였고 회사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직원 대부분 20대~30대 초반이었고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장미 빛 전망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았던 A사는 뚜렷한 실적을 보이지 못하고 몇 년 후 사업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뒤돌아 보니, A사의 사업분야, 경영방식, 조직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자유가 넘쳤다.  솔직히 얘기하면 일하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  기업체가 동아리나 사교 모임과 다른 이유는 두 가지는 ‘이윤 추구’와 ‘지속 가능성’이다.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기업은 노동자에게 고용안정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기업의 여러 기능 중 최소한 핵심 사업분야(primary activity)에서는 일정한 규율이 필요하다.  고객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나 규율이 있어야 한다.  직원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고객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IT 아웃소싱 사업을 수행했던 L대표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넉넉히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급적 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사무 공간도 편리하게 바꾸고, 근무시간도 줄여주고, 휴가도 넉넉히 부여하였다.  그러나 직원의 자율성이 높아진 것에 대한 대가는 고객들의 불편함으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고객이 업무상 요청을 하였을 때 담당 직원이 휴가를 가면 처음에서는 “죄송하지만…”라는 뉘앙스로 이해를 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휴가 간 사람을 왜 찾느냐?”라는 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결국 고객들이 하나둘씩 떠나게 되었고 L대표는 해당 사업을 접게 되었다.  자율성을 만끽하던 직원들도 결국 자유인이 되었다.    


필자는 학창 시절에 청운을 꿈을 꾸며 학교 고시반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초기에 조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같은 방을 쓰는 졸업생 선배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야! 그냥 편하게 공부하면 돼. 다만, 선배랑 속옷만 바꿔 입지 않으면 된다.” 

그때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필자는 지금 조직에 속해 있지 않지만, 회사 후배가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회사가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일하면 된다. 그러나 진짜 놀이터가 되면 안 된다.

새로운 것의 창조는 지능이 아니라 내적 필요에 의한 놀기 본능을 통하여 달성된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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