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에서 국선 사건으로 만난 N은 사회 초년생으로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다고 필자를 찾아왔다. 첫 미팅 자리에서 N은 해고 당시에 대표자와 나눈 녹취 내용을 들려주었다. 녹취 내용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어봤지만, N이 해고를 당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주요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대표자: “자네와 우리 회사는 좀 안 맞는 것 같다. 아직 젊으니까 더 늦기 전에 본인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봐야 되지 않을까?”
N: “… 알겠습니다.”
N 입장에서는 “사장님이 나가라고 해서 나온 것이다. 이는 명백한 부당해고다.”라고 주장하나, 회사 입장에서는 N의 향후 진로에 대해 권유를 한적은 있지만, 최종 의사결정은 N이 하였으므로, 자진 사직 또는 권고사직이라고 주장하였다.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방식은 크게 ‘퇴직(사직)’, ‘해고’, ‘자동 소멸’로 구분된다. 퇴직은 노동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것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조치인 해고와 구별된다. 그러나 퇴직의 종류 중 하나인 ‘합의해지’ 즉, 권고사직이 해고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권고사직인지? 해고인지? 에 관한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권고사직은 상호 합의를 전제로 하지만, 노동자가 먼저 회사에 퇴직에 관한 합의를 제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먼저 “퇴사하는 조건으로 실업급여를 받게 해 달라.”라고 제안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퇴사를 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사의 퇴사 권유를 노동자가 흔쾌히 수용하면 ‘합의해지’로 처리하게 되고, 법률적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가 마지못해 수용하거나 사용자의 권고를 거부한 채 회사를 나오게 되는 경우, 노동자는 “해고를 당했다.”라고 주장하고 사용자는 “권고사직”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실무적으로 권고사직인지 해고인지는 사직서 작성 여부로 구분한다. 노동자가 사직서를 작성하고 퇴사한 경우에는 회사와 합의가 이뤄진 것이므로 권고사직으로 간주하고, 사직서를 작성하라는 사용자의 권유를 노동자가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막는 것은 해고로 판단할 수 있다.
몇 년 전 국선 해고 사건을 맡았을 때 일이다. 상가 관리사무소에 새로 부임한 소장이 경리 직원에게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며, 경리직원에게 사직서 작성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어서 소장은 “내일까지 사직서를 작성하면 한 달치 위로금을 지급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 마저도 없다”라고 했다. 해당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하였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해고당한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였다. 노동자의 딱한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이와 같이 사직서를 작성한 경우 부당해고로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대법원 판례는 이와 같은 경우 자발적인 사직으로 본다.
“노동자가 사직서를 작성할 때 진정으로 사직을 바라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사직서 작성)를 한 경우에는 내심의 효과 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2다11458, 판결]
해고의 사유나 절차 등이 비교적 까다롭다 보니, 사용자들은 해고보다는 권고사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가 사직을 권유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으나, 노동자가 이를 거부할 때가 문제다. 상당수 사용자들은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 묻어두기보다는 일단 마음을 정하였으니, 법률적 위험 부담이 있더라고 해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론적으로 권고사직과 해고가 구분되지만, 결과적으로 노사 간 고용관계가 종료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노동자 입장에서 권고사직은 해고에 준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해고하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말하는 사용자가 많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에서는 ‘권고사직’으로 퇴사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사용자의 말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희망퇴직한 사람 중 희망한 사람이 없고, 권고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정과제 100대 과제 중 ‘근로계약 종료 전반에 관한 개선방안 마련’이 선정되었다. 일부 기업 중에 무해고 정책(No fire policy)을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해고는 없다”라고 선언하니 채용이 신중해졌고, 자연스럽게 해고할 대상이 없어지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