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돌아오는 화이트 데이처럼 자주는 아닐지언정, 꾸준히 챙기는 친구들이 있다. 올해도 생일을 맞이하여 성북동 작은 식당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했다.
구름이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처럼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어느 날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식당은 고풍스런 흰머리를 장난스럽게 땋아, 좌우를 다른 색(한쪽은 분홍 한쪽은 연두. 둘 다 형광에 가깝다.)의 고무줄로 묶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이 식당을 택한 이유는 사장님의 매력적인 패션 때문이 아니라, 조미료가 없는 건강식에 있었다.
“우리 이제는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예전에는 건강식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건강식을 챙기며 “너네 언제 결혼해?”, “옛날엔 이랬었지!”라는 버릇 같은 말들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 웃음 지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 녀석이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나 지난달에 퇴사했어! 새로운 거 하려고 하는데 내가 뭐할 것 같아?”
서른이 지나고 나서 새로운 것이라면 환장하는 병에 걸렸는데, ‘퇴사’ 그리고 ‘시작’이라는 단어는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하는 자극적인 단어였다.
“예전에 너 제주 한달살이 좋아했잖아. 그거 다시 하려고?”
“네일아트 샵?”
“설마 결혼해?”
스무고개 마냥 정답을 찾으려고 질문을 나열하는 모습이 어쩌면 남들 눈에는 범죄자 취조의 현장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만큼 열정을 다했지만, 정답은 맞히지 못했다.
“그냥 말해줘. 웬만하면 놀라지도 않을 것 같은데.”
“나 수능 다시 봐.”
“어…?”
놀라지 않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고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친구가 어떤 친구냐. 그 흔한 재수 한 번 하지 않고 타짜의 정 마담이 자랑했던 그 여대를 졸업하곤, 잘 나가는 수학선생님으로 능력을 인정받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넘은 우리에게 수능이라는 단어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매년 어느 빵집에서 찹쌀떡과 엿가락 같은 것들을 묶어 수능 팩을 만들어도 전혀 관심조차 없지 않았던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취업시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도 이미 경험했던 터라. 친구가 내심 걱정되어 어떤 말을 할지 몰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그녀는 멍청한 표정의 얼굴을 향해 여유롭게 웃음 짓곤 말을 이어나갔다.
“나 의대에 도전해보려고 해. 아직 할머니 되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 보람 있고 삶의 질도 높은 일을 하고 싶어.”
그 당당하고 여유로운 태도에서 그녀가 스스로를 믿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새로운 일을 결심한 것에 대해 축하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나 또한 의사 친구가 생길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곤 다음 날 다른 무리의 친구들에게 내 친구의 도전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글에서 처럼.
우리 주변에는 모두가 그렇다고 믿는 사실들. 긴가민가 하면서도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기정 사실화된 존재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자동차사고에서 백 퍼센트 과실이 없듯, 백퍼센트라는 단어는 이상적인 단어일 뿐이다. 이미 알려진 사실들에도 빈틈은 분명 존재하고, 희박한 확률이라는 말은 “확률이 있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신뢰’라고 생각한다.
어떤 스포츠든, 홈 그라운드에서의 경기 승률은 원정 경기에서의 승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익숙한 장소라는 원인도 있겠지만, 홈 그라운드에서 승리는 선수들을 믿고 응원하는 팬들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믿음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며, 누군가가 믿고 응원해주는 일은 이뤄질 확률이 높아진다.
운동선수처럼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응원을 얻어내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목표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먼저 믿어야 한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이 이뤄지길 믿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응원의 말을 던지며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해낼 확률이 높아지는 게 몸소 느껴지는 그 순간이 찾아온다. 애타게 기다리던 택배처럼 덜컥.
그러다 보면 수능을 다시 보는 친구를 믿게 된 것처럼, 주변 사람들도 나를 믿고 해내기를 응원해 줄 수 있게 된다. 마치 홈 그라운드 위의 당당한 운동선수들처럼 말이다.
나 또한 이러한 ‘자기 신뢰’를 통해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늘상 ‘실업률’, ‘사상 최대’와 같은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던 때였다. 흔히 말하는 취준생의 신분으로 대기업 입사를 꿈을 꾸며, 들어봄직한 모든 기업에 원서를 넣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원하던 직장인이 아니라, 수많은 불합격 문자들의 수집가가 된 것이다. 수집한 문자들을 안주삼아 친한 형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술자리에서 오고 갔던 말의 대부분은 “요즘 워낙 취업이 어려우니까, 가고 싶은 곳보다는 갈 수 있는 곳을 가라.”는 걱정 어린 충고였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카페 사장님 또한 취지가 어찌 되었건(물론 걱정에서였겠지만.) 내가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힘들 수도 있으니, 자기 밑에서 일하라고 권유를 했다. 심지어 단골손님들도 이미 내가 전문 바리스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 꿈과는 다르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인해 나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카페 일을 그만두었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따윈 없었고, 그저 취업난을 이기는 어렵다는 전제가 항상 깔려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위로나 세상 탓이 아니라, 그저 응원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응원받지 못했으니, 응원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학교 취업센터에 상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수화기 속 얼굴도 모르는 상담 선생님은 술자리의 형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니, 더욱이 나 스스로를 믿어야만 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가 나를 제일 잘 아는데(너네는 모르는 내가 있는데), 나는 반드시 할 수 있어. 응원한다.”라고 외치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뿐이었다.
이토록 스스로를 응원하던 나조차도 너무 슬퍼서 무너진 날이 있었는데, 한 대기업의 면접 진행 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날이었다. “대기업 면접 과정을 진행요원의 시선으로 체험해보면, 면접에 도움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신청한 아르바이트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면접자들을 안내하는 일이었는데, 면접의 중반쯤 지났을까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년 전, 한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만난 친구의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반쯤 열린 황금빛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말이다. ⏤대충 이름을 알고, 인사만 했던 친구의 얼굴이었다.⏤ 검은 무리들 사이에서 대롱대롱 떠있는 그 얼굴을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빨라진 심장박동처럼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등과 뒤통수로 내 얼굴을 숨겼다. ‘자기 신뢰’를 하며 노력했던 나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 반사신경은 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밤 12시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여전히 깨어계셨다. 어머니는 늘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편이기에, 부담이 될까 봐 그랬는지 몰라도 취업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 날은 내가 먼저 어머니께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들이 아들 스스로를 믿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나는 나를 믿거든. 그러니까 엄마도 나를 믿고 딱 1년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을 뱉은 날 잠이 오지 않았고, 이를 악 물고 스스로를 조금 더 믿고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어머니는 내가 했던 말대로 단 한 번도 취업에 대한 재촉 없이 믿고 기다려주셨다. 나 또한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이어나갔다. 결국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집으로 날아든 입사 축하 화환을 받아 들고 나서야 어머니께서는 여러 감정이 뒤 섞인 눈물을 흘리셨다.
이처럼 모두가 어렵다고 느끼는 일에 있어 ‘자기 신뢰’는 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자기 신뢰’는 목소리에 강한 힘을 실어주고, 눈동자에는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담아 놓는다. 더 나아가 그 눈동자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에 온 듯한 짙은 안정감과 믿음을 불러온다. 그리고는 결국 해낸다.
그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친구를 믿고, 응원하고, 또 기대해보려고 한다. 푸른 바다를 담은 눈동자를 가진, 서른이 넘어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나의 소중한 친구가 의사로서 더 맛있는 건강식 집에 데려가는 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