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스무 살 때였다.
바다와 물을 좋아하지만,
수영이라는 능력을 내 몸에 미리 장착하지 않아 몇 차례 죽을 고비가 있었고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를 무언가로부터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강습 첫날,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과 함께 "음-파, 음-파"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민망했지만,
뭐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여동창들도 그 기초반을 수강했더라.
10여 년 만에 팬티 차림으로 만나, 가릴 거라곤 물안경밖에 없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그 후론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수영이란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몇 년이 더 지나서였다.
회사에 입사해서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내 삶에서 몇 가지 힘든 일들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남들에게 말하기도 힘든 고민,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회사 동료를 따라 수영장에 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속해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파도들을 감당하며.
멍-때리다 보니 어느 순간 수영장에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물가에선 늘 좋은 노래나 들으며 태닝을 하거나,
혹은 개헤엄이나 치며 주변의 비웃음을 사던 사람이 처음으로 수영을 하려고 하니,
이상하게도 숨이 목에 '턱'하고 걸렸다.
큰 파도도 없는 잔잔한 실내 수영장에 몸을 담궜을 뿐인데,
횡격막을 아래로 늘어트리는 일이 생각보다 버겁고 서러웠다.
물속에서의 답답한 그 순간.
물의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그 순간들.
물리 시간에 배웠던 그놈의 '력(力)'이라는 돌림자를 가진 친구들이
⏤물 위로 나를 올려 보내려는 친구들과 물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친구들
마음껏 내 몸을 좌지우지했다.
그 덕에 정신이 없어, 고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억누르는 물의 압박을 견디며
계속해서 내 몸뚱아리를 앞으로, 더 앞으로 띄우는 일; 수영을 계속하게 되었고
이 투쟁 같은 일들이 내 힘든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인생에서의 큰 고민, 짙게 깔린 고통 때문에 내 몸은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이 짓눌려있었고
나의 상황은 마치 고민과 고통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한 곳에 정박할 수밖에 없는 닻(Anchor)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무 살의 나에게는 배울 기회를 허락하지 않던 수영이란 놈은
이제야 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었고,
아무리 짓눌리고 아파도 나는 한 곳에 정착하는 닻(Anchor)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의 힘을 받아 계속에서 전진하는 돛(Sail)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원한다면 몸을 힘껏 펼쳐 어디든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어쨌든 결국 나는 수영을 좋아하게 되었다.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