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살면서 그토록 무서운 안국역은 또 없었다.
갓 전역한 해에 T와 함께 타투Tattoo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어떤 타투이스트가 잘하는지, 가격은 얼마고 또 어떤 디자인이 어울릴지 검색하곤 했다.
“넌 이게 잘 어울리겠다.”라며 T에게 보여준 타투는 굉장히 해괴한 모양이었다. 친구 아니랄까 T 또한 이상한 모양의 타투를 추천하며, 같은 레퍼토리의 장난에도 소년처럼 즐거워했다.
이토록 타투에 꽂혀있던 것은 말 그대로 군대에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는 보통 새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게 타투와 무슨 상관이냐. 일종의 의미부여였다. 그 당시 기억을 되살려보면, 평생 마음속에 각인시켜야 할 문구를 몸에 새기는 일을 시작으로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중이병은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타투에 관한 포털사이트 속 수많은 지식인들의 글을 다 읽고서야 우리는 누구에게 타투를 받을지 결정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다!”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가 T와 동시에 반응한 타투이스트는 바로 N이었다.
포털사이트에 타투이스트Tattooist N의 이름을 검색하고, 이미지 더 보기 버튼을 누르자, 더욱더 믿음직스러운 타투이스트의 모습ㅡ종아리, 팔, 목. 심지어 얼굴까지 타투가 있었다.ㅡ을 볼 수 있었다.
N의 몸에 새긴 타투와 옷 스타일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단순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종이비행기조차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우주 속 수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타투를 N에게 받기로 하곤, N의 타투샵이 있는 안국역으로 향했다.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내려서, 북촌 한옥마을과 창경궁 돌담이 부드럽게 이어져있는 원서동 골목으로 걸어갔다.
고풍스러운 원서동의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T의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있었고 무척 초조해 보였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다크서클이 옮는다는 뜻이었나? T의 얼굴과 함께 몸을 찌를 바늘을 생각하니 내 얼굴빛도 함께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마침내 N의 타투샵 앞에 도착해서 잠시 머뭇거렸다가, 물속에 잠수라도 하듯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똑똑똑-'
“안녕하세요. 타투하려고 왔는데요.”
N은 밀가루처럼 희멀건한 우리의 팔을 슬쩍 보더니, 타투 도안이 들어있는 책을 건네며 말했다.
“타투는 처음이신가요?”
타투가 많고 강한 겉모습과는 달리 N은 상냥하게 우리에게 이런저런 도안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정성스러운 설명에 보답이라도 하듯 우리도 긴 시간 고민해온 복잡스러운 디자인을 흰 백 지위에 그리며 말했다.
“저는 심장 모양 디자인 위에 좌우명을 같이 적고 싶어요”, “저는 아직 정하지는 않았는데, 제 좌우명인 이 문구를 필기체로 적어보려고요.”
꽤나 멋있는 답안을 제출한 학생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답변을 기다리며 N을 바라보았다.
N은 칭찬이나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근데 타투는 왜 해요?”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질문이라면 멋들어진 한마디로 답할 수 있었다.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은 말들을 몸에 새겨보려고요.”
아까와 마찬가지로 칭찬으로 받을 간식을 기대하는 강아지들처럼 똘망똘망하게 N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잘했어, 라이코스” 혹은 “칭찬해~”와 같은 말이 돌아올 줄 알았으나, 예상 밖의 대답이 화살처럼 날아와 귀를 관통해 심장에 박혔다.
“타투하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오늘만 날은 아니고, 저는 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음에 다시와도 좋아요.”
“네...?”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들은 말 그대로 마음속 깊이 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타투는 멋이에요. 단순하게 생각해보세요.”
수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 디자인의 타투이스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해서, 알겠다고 답하곤 머리가 하얘져서 계단을 올라와 다시 안국역으로 걸어갔다.
의미가 있어야 좋은 거 아닌가? 최근에 들은 마케팅 교양에서도 성공한 브랜드는 모두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변기통도 의미를 가지면 작품이 된다고 했는데...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멋으로 타투를 하라니?
타투이스트라기보다는 친척형의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N의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그의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눕자마자 N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조금 더 감성적인 시간이라서 그런지 머리의 오른쪽 부분이 더 잘 굴러가는 게 느껴졌고, 그가 한 말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 때 없이 아무 곳에나 의미부여가 하는 것이 멋이 아니라, 멋은 멋대로 두고. 중요히 여기는 가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두어도 되는 것이었다. 굳이 타투까지 의미를 두어 간단하지 않고, 괴상한 도안을 몸에 새길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그때 그린 디자인과 문구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의 그것처럼 난잡했다. 했다면 지금쯤 후회를 할 것만 같다.)
세상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말 그대로 세상은 무의미의 축제인데, 모든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행위이지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가는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옛 조상들의 말처럼 모든 일에 요란스러운 의미를 갖다 달지 않고,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보다 소중한 것들에 의미를 두고, 그걸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조금 더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투이스트 N의 깊은 내면을 경험하고, 그가 더 멋있어 보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어도 피곤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문득 이유 없이 떠오른 생각이 정답인 경우가 참 많다. 무의미의 축제처럼 펼쳐진 인생 속에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갈팡질팡하기보다는 나이키 광고의 카피처럼 ‘그냥Just do it’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애늙은이처럼 모든 곳에 의미를 부여하려던 내가 그 날 이후로 조금은 편해졌다. 반면에, 타투보다도 변하지 않을 내 삶의 중요한 것들을 가녀린 성냥불 대하듯 정성껏 지켜나가고 있음에도 삶이 이전보다 덜 피로하게 느껴진다.
이게 다 타투이스트 N의 교양수업 덕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N을 발견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더 이상 타투이스트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익숙한 다섯 음절 대신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다.
타투를 하러 간 날, 의도치 않게 진행된 역대급 교양수업처럼, 작품 전시와 강연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곤, 어두컴컴한 지하 타투샵이 아니라 밝은 무대 위라는 것이었다.
스크롤을 내려보니 기사에는 사진이 몇 장 더 있었다. 못 본 새에 그의 몸에는 주름과 함께 타투가 몇 개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이제는 새로 생긴 타투의 의미보다는 흘러온 세월 동안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혹여나 책은 내지 않았는지, 그리고 책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 그가 알려준 것들 때문이 아닐까.
무의미의 축제*: 제목은 밀란 쿤데라가 쓴 동명의 에세이에 착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