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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y 05. 2021

남의 돈 벌기가 제일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너무 어렵잖아요





대학생은 가난하다. 대학생은 씀씀이가 크다. 상반되지만 동시에 성립하는 이야기다. 성인이 되었으니 학생 때보다는 씀씀이가 커졌고, 그럼에도 여전히 가난한 건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제일 부자일 줄 알았던 나에게는 나름의 충격이었다. 선배들이 후배 밥을 사주고 술값을 대신 계산하고, 한 턱 내기도 하는 걸 보면 돈 걱정은 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럴 돈이 있거나 그럴 돈을 벌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나도 그런 어른에 가까워졌다. 후배들 밥을 사주기도 하고 친구랑 만났을 때 한 턱 내기도 하고. 가끔이지만 엄마 아빠 선물도 좋은 걸로 사드리고. 




지갑에 여유가 있을 때만큼 마음이 여유로울 때가 없다. 모든 여유로움과 인품은 모두 '돈'으로부터 기반이 되니, 돈을 버는 일에는 더욱 집착하게 되는 수밖에.








성인이 되면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다. 아르바이트, 흔히 알바라고 부르는 일이다.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대학에 오고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열심히 알아봤다. 문자를 수십 군데를 보내고, 면접을 몇 번이나 봐도 아무도 날 불러주지 않았다. 그때는 경력직만 찾았다. 괜찮다는 곳에는 나보다 적절한 지원자들이 많았고 자연히 나는 도태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곳이 딱 두 군데가 있다. 코인 노래방과 고깃집이었다. 두 군데 모두 우리 집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해서 거리상으로 가장 매력적인 곳이었다.




최악을 꼽자면 코인 노래방이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대뜸 일을 시켰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었던 나는, 무급으로 그곳에서 한 시간 동안 일을 했다. 면접을 보더니 포스기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며 실제로 가서 해보라고 했다. 일을 더 시키려고 해서 다음 수업이 있음을 열심히 어필했다. 가게를 나오기 전에는 알바가 어떤 것 같냐고 물어봤고 나는 생각보다 어렵다고 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솔직한 감상이었다.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도 문제가 없었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감상을 듣고 이것만큼 쉬운 일이 어딨냐고 노발대발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야간 시간에 일하는 만큼 돈을 주지 않으면서 일이 힘들지 않으니까, 하고 대충 얼버무리는 사람들 치고는 적반하장이었다. 그 후에 일하러 오라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얼마나 만만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깃집은 나 역시 잘못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물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사장은 정신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분명 첫 알바라 능숙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사전에 협의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그런 일을 새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못하는 일에는 혼을 내면 되는데 꼽을 줬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시계를 보라고 해서 봤더니 이 시간까지 그것밖에 못했냐고 면박을 줬다. 해본 적 없는 계란찜을 못하겠다 했더니 자신이 계란찜을 하는 바람에 초벌 고기가 탔다고 화를 냈다. 나는 만들어본 적 없고 눈으로 딱 한 번 본 계란찜을, 그것도 월요일날 보고 수요일날 만들어서 손님에게 내 가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면 이런 고깃집까지 내몰리지도 않았을 텐데-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성을 내면서 먹고 가라고 했다. 흰쌀밥을 꾸역꾸역 쑤셔 넣은 건 오랜만이었다. 서빙하던 된장찌개에 덴 상처가 아팠다.





다행일 수는 없지만 나는 그곳에서 쟁반을 두 번이나 엎었기 때문에 그만둘 명분이 있었다. 딱 이틀을 나가고 빠르게 그만뒀다. 사장에게 내가 민폐가 되는 것 같아 그만둔다고 했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뒤로는 화상 과외 알바를 8개월, 또 동아리에서 수입이 있어 9개월을 버텼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스터디 카페였는데 운 좋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일이 편한 것도 있지만 가장 좋은 건 사장님이 너무 좋은 분이라는 점이었다. 근로계약서를 각자 한 장씩 나눠가지고-여러 친구들에게서 실제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서명 후에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인사하셨다. 뭔가 책임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꾸준히 존댓말을 사용하시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신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하셨다. 계속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니까 손님이 없으면 앉아도 된다고 하셨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래서 사장님이 베풀어주는 작은 호의들이 반가웠다. 이제는 이 호의들에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또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어야지.




그저 돈을 벌고 싶어서, 돈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는 것 같다. 나의 노력이 금전으로 돌아오는 이 기분. 누구나 그렇듯 일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으면 싶고 월급날은 더 빨리 찾아왔으면 싶다. 이번 월급은 누구를 위해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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