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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Nov 01. 2023

Prolog

세상의 모든 고통과 맞서 힘 내고 있을 그대들에게.

투병기간 동안 너무 아프거나 힘들어서 아이에게 엄마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16번에 걸친 항암치료와 10번의 방사선 치료, 그리고 한 번의 수술 과정 중 어떤 항암 약은 암세포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고, 건강한 세포들만 모조리 죽여 버리는 생체기만 잔뜩 남겼고, 그 부작용이라는 것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 말하자면 인간이 견뎌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엉덩이 사이와 양쪽 가랑이에 괴사가 생겨 속옷을 입을 수가 없었고, 발바닥이 전부 헐어 몇 발작 걸으려고 발을 땅에 디디면 찢어지는 고통에 견딜 수가 없었다. 손톱, 발톱은 마치 어린아이들 유치가 흔들거리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힘없이 흔들거리더니 하나, 둘씩 내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전신의 피부가 얇아져서 공항에 가면 자동인식 기계가 손바닥 지문을 인식하지 못해 난처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팔뚝부터 시작된 신경의 저림은 팔목을 거쳐 손가락 끝까지 전달되어 마치 감전된 고양이의 털이 서듯, 온몸을 쭈뼛쭈뼛 떨게 만들었다.


아이를 출산할 때 고통이 ‘뼈를 깎는 고통’이라면, 항암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까지 합치면 그것의 열 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세포독성 항암 약의 부작용은 그만큼 심했고, 치료 기간이 1년 6개월이 걸렸으니 출산의 고통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생각이 든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년 6개월의 항암은 어느덧 오래된 과거인양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고, 다시는 어떤 일도 해 낼 수 없을 것처럼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던 손가락들도 서서히 회복되더니,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정도로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진단 후 3년 차 종합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 없음으로 나왔고, 지금 현재는 수술 전 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암이 완치되었다고 자만하거나 내 삶이 완벽하다고 우쭐대지 않는다.

오히려 늘 내 몸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식생활과 생활습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또한 겸손한 마음은 병을 앓으며 얻게 된 선물이기도 하다. 마음의 병이 곧 몸의 병이 된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마음가짐이 건강에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늘 자각하며 지낸다.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이 없을 때 무작정 말기 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4년 전 대장암 3기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했던 지인은 간으로 암이 전이되어 또 한 번의 수술을 마친 상태였고, 누구보다 초연하고 건강하게 생존해서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분이 유방암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걱정하지 말고 치료를 잘 받으면 된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큰 병을 앓아보지 않은 건강한 지인들이 건네는 조언과 위로는 사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유방암은 요즘 암도 아니다.”라며 남의 지병에 대해 위로랍시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내 병환에 대해 퍼뜨려서 사람들로부터 걱정만 사도록 일조했을 뿐, 나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채워주지 못했다.


반면 나와 같은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를 마친 지인은 치료 과정과 부작용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여러 번 다녀온 환우로부터 듣는 체험담이었기 때문에 나는 치료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치료 기간 동안 힘든 일이 많았는데, 먼저 암 치료를 경험한 선배들의 조언이 내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도움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다.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고된 항암 치료 중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마다 마음을 다 잡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여러 환우들의 도움으로 나는 항암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을 수 있었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나도, 암에 걸려 멘털이 붕괴된 후배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 생존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도움이 되려면 일단 나 먼저 살고 봐야 했다.


1년 반의 표준 치료 기간과 1년 반의 회복기 동안, 저명한 박사들이 쓴 저서들을 통해, 논문을 통해, 인터넷 자료들을 통해 암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오랜 기간 동안 암에 대해 연구한 박사들의 저서에 의하면 암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산소의 부족, 영양의 부족, 세포의 손상, 몸의 산성화, 저체온, 스트레스, 염증, 수면 부족 기타 등등. 내 몸의 상태와 견주어 보니 무엇 하나 원인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과거의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철저하게 돌아보고 분석하여 수정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1년 6개월의 항암 치료 기간 플러스 1년 6개월의 회복기는 나에게 인생의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길게 휴가를 얻어 본 적이 없었는데, 신이 나에게 내 몸과 마음을 충분히 돌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선물을 주신 것만 같았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불안으로 심리적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치료의 방해 요소가 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그래서 신경 정신과 의사도 찾아가 보았지만, 암을 경험해 보지 못 한 일반인 의사가 해 주는 말들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환자의 마음은 같은 경험을 가진 환자만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암 환자 같은 중증 환자들은 보통 건강한 일반인들의 위로에 크게 도움을 받지 못한다.


암 환자의 마음은 본인 스스로가 달래고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암의 치유는 시작된다. 나는 모든 항암 치료를 앞둔 환자들에게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병이 낫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항암 치료 이후 회복기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므로 항암 치료가 끝났다고 바로 일상으로 복귀해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는 절대 의사들이 해 주지 않는다. 의사들은 항암 치료가 끝나면 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했다가는 손상된 세포를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어, 암세포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 항암 약 성분과 방사선 치료로 이미 몸은 완전히 발암물질에 노출된 상태이므로, 우선은 해독에 치중해야 한다.


항암 치료가 끝난 이후 약 1년~ 1년 반은 몸도 마음도 쉬어주면서  새로운 세포가 건강하게 내 몸 안에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쉬는 동안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건강하게 바꾸는 계기로 만들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면 암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항암 진단부터 시작해서 항암 치료 과정 및, 치료 후 회복을 거쳐 관리하는 여정을 환자의 입장에서 담은 책이다.


내가 죽음의 입구 앞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이유는 다만 이승에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라고 신이 나를 지구에 남겨두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암 진단을 받은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나의 경험들을 거울삼아 암 환자들이 모든 예측 불허한 불리한 상황에서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든 상황이 닥쳐도 이 책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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