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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Nov 22. 2023

암 요양병원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방법

의료 천국 대한민국

‘요양병원’이라고 하면 왠지 연세가 많은 노인들의 시설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됐다.


그러나 ‘암 환자 전문 요양병원’ 이 서울 한 복판에 즐비한 것을 보니, 대한민국에 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예측할 수 있었다. 나도 암 환자가 되어 보니 생전 해 본 적 없는 입원이란 것을 다 해보고, 요양 병원도 찾게 되고, 이 나이에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암 환자 요양 병원이라고 하면 고가의 치료비를 요구할 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호텔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그 또한 비용이 만만치 않고, 외로울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외롭고 힘든 과정을 보내면서 혼자 호텔에서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청승을 떠느니, 환자들이랑 같이 지내며, 정보도 공유할 수 있는 요양병원에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는 특히 숙식이 편해야 치료에 효과를 더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본 암 환자용 식단이 눈에 들어왔다. 암 환자의 영양을 고려한 친환경 식재료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야채 반찬들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전문 영양사가 조리방법과 영양 성분을 고려하여 제공하는 환자용 식단은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교통의 편의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주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식단이 잘 나오는 것이 선택의 우선순위였다.


예약문의를 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입원비 기본 패키지가 내 한 달 생활비랑 맞먹었다. 호텔에 가나, 요양병원에 가나 돈이 나가는 건 마찬가지이니, 내가 언제 또 나를 위해 이런 거금을 써 보겠나 싶어서 과감하게 암 환자 전문 요양병원을 예약했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예약이 어렵기도 했고, 일주일 이하 투숙 환자들은 아예 입원을 받지를 않았다. 나는 10회 방사선 치료가 진행되는 2주간을 요양 병원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말하고 3인실 베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원장과의 상담을 통해 앞으로 받게 될 치료들을 설계하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창가나 넓은 공간의 침대도 있었지만, 나는 화장실 옆, 구석에 있는 침대를 선택했다. 환자이기도 했고, 성향상 사람들 왕래가 많은 자리에 있으면 일일이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 조용히 쉬기 위해 구석자리를 택했다.


3인실 병실에 다른 두 침대의 환자들은 보이질 않았다. 공간이 여유로워서 그랬는지, 환자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병실 분위기는 조용하면서도 자유로웠다. 짐을 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그제야 한쪽 침대의 주인이 나타났다.


“오늘 처음 왔어요?”

“네~”


나 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예쁜 중년의 환자는 호기심 가득한 눈 빛을 머금은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잘 왔어요. 내가 요양병원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이 병원이 밥도 잘 나오고 도수 치료도 괜찮아.”


병원이 내 집처럼 편해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베테랑 환자들이 오가며 길을 닦아 놓은 것이었다.


“아… 도수치료요? 그건 뼈에 이상 있는 사람들이 받는 거 아닌가요?”

“암 환자들도 도수치료를 받아야 돼요.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니까. 실비 보험 있어요? 실비로 처리되니까 도수치료 꼭 받아요.”


오호라, 실비로 보험처리를 받을 수가 있겠구나. 역시 사람은 뭐든 일단 지르고 봐야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병원비가 두려워서 호텔을 예약했더라면 되려 생돈을 날릴 뻔했다.


‘보험이라는 건 내가 아플 때 써먹기 위해 들어 놓은 건데, 내가 왜 병원비를 걱정하고 있었지?’


‘돈 쓰기로 마음먹고 요양병원에 오길 잘했다. 하마터면 이 좋은 치료들을 구경도 못 하고 치료의 기회를 놓칠 뻔했네! 죽을 때 죽더라도 좋은 치료라도 실컷 받아 보면 후회는 없겠지!’


암 전문 요양 병원엔 도수 치료뿐만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여러 가지 혈관 주사제 및 온열 치료 기계도 있었고, 정서적 안정을 위한 미술 치료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었다. 한방 병원이다 보니 한방약제들도 처방이 되었고, 항암 부작용을 완화시켜 주는 말초신경 치료 기계도 있었다.


어찌나 받을 수 있는 치료들이 많은지, 요양병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좋은 치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쳤을 뻔했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은 실비 보험으로 요양병원도 이용할 수 있다. 보험에 따라 한방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보험이 있는데, 나는 한방보장은 안 되는 실비를 갖고 있어서 한약 처방의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양방에서 치료약으로 쓰는 주사약들은 대부분 보험 처리가 가능했다.


같은 병실 환우가 추천해 주었던 도수치료는 항암 치료로 인해 긴장되었던 근육을 이완시켜 주고 신경을 안정시켜주기까지 했다. 항암 치료를 8회나 진행한 후라 온몸이 쑤시고 뼈 마디마디가 아팠는데 도수 치료사가 근육을 풀어주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도수치료가 끝나고 나면 고주파 온열치료로 냉해진 몸을 따뜻하게 데웠다. 치료실 한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고주파 치료기계가 있었는데, 동그란 강판을 배 위에 한 시간 정도 올려놓고 나면 피부 온도의 변화는 없고, 배 속 깊은 곳만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심부체온이 올라가면서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노곤한 기분이 들었다.


대학병원의 표준치료로 긴장되어 있던 몸은 요양병원의 보조 치료들로 이완시킬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난 후 병실로 올라오면, 맛있는 암 환자용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지금까지 몰라서 집에서 간병을 해 주신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오전에 대학병원에서 방사선 치료가 있으면, 요양병원 셔틀이 병원 예약시간에 맞춰서 병원 앞까지 픽업서비스를 해 주었다. 습한 7월의 마지막 주였기에 차량 서비스를 받지 못했더라면 방사선치료를 위해 그려둔 상체의 선들이 땀으로 전부 지워질 뻔했다. 호텔에 묵었더라면 매번 지하철을 타거나 택시를 타고 오가면서 에너지를 낭비했을 텐데 요양병원 셔틀을 이용하니 세상 편하고 좋았다. 요양병원의 서비스를 받는 동안은 대기업 금수저도 부럽지가 않았다. 모든 것이 암 환자를 위해 맞춤형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다시 병원 앞에서 환자들을 픽업해 요양병원으로 편안하게 모셔줬다. 병실에 도착하면 또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고 있었고, 식사 후엔 다시 환자가 원하는 치료들을 받을 수가 있었다. 어쩜 모든 것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암 환자의 세계에도 무릉도원은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 수준이라는 것은 정말 세계 최고이다. 돈만 있으면 필요한 어떤 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비용이 좀 든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생에 한 번 정도 있을 암 치료의 과정에 이 정도 편리를 얻는다면 아끼지 말고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언제 또 이런 금수저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실비 보험이 치료비의 많은 부분을 보장해 주니 사실 큰돈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환자를 위한 맞춤형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 외에도, 요양병원에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크나큰 혜택은 나와 같은 처지의 환우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성이 다수인 병동에서 유방암, 자궁암 및 위암 환우들과 만나서 서로의 인생이야기를 공유하며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암이 발생한 나름의 이유에 대해서도 본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영양제며 부작용 부위마다 필요한 약제들에 대해서 암 환자들은 의사들 못지않게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치료 및 영양에 대한 정보부터 시작해서 민간요법에 이르기까지 암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박사들이었다.  암 치료를 받으면서 사실 건강한 친구들과는 연락하기가 불편해졌는데, 암 환우들과는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다. 처지가 같고, 공감대가 형성되니 대화가 잘 통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횟차가 진행될수록 치료받은 부위가 벌게지고 따끔거리기도 했다. 치료의 부작용이 생길 때마다 나의  러닝 메이트 환우는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약이나 연고를 알려주었다. 어디에서 파는 어떤 브랜드가 좋다 해서 부작용 부위에 발라보면 영락없이 효능이 좋았다.


나에게 도수치료를 소개해 준 같은 병실 언니는 요양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사제에 대해서나, 실비 보험에 관련된 내용은 장시간 강의를 해도 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간 AI가 따로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전직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이었다. 사람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환우들이 알려준 상황에 맞는 처방전은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인간을 대체할 수 없을 것처럼 완벽했다.  


대학병원의 표준치료의 힘, 요양병원의 보조치료의 힘, 그리고 나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방사선 치료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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