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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Nov 15. 2023

방사선 치료의 격차

맹물샤워 

유방암 치료는 현대의학에서 정해 놓은 표준치료가 이미 존재한다. 선 항암, 수술, 방사선, 후 항암을 하는 것이 보통의 표준치료 과정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수술을 먼저 하기도 하고, 운이 좋은 경우에는 항암을 건너뛰기도 하며, 방사선치료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1기 이상의 유방암 환자들은 대부분이 항암 치료를 받게 된다.


수술이 끝나면 약 2 주 후에 바로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는데, 나는 방사선과 담당의와 상의 후 10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했다. 타 병원 환우들에게서 들은 정보로는 20회 이상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에 비해 치료 횟수가 적어서 담당의에게 방사 회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요즘은 기계가 좋아져서 방사선을 그렇게 많이 쪼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의 얘기를 듣고 방사선치료실 입구에 붙어있는 방사선 기계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읽어 보니 고선량률로 단시간에 치료가 가능한 최신식 장비였다.


‘방사선 자체가 발암물질인데 많이 쬐어 좋을 것이 뭐가 있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와 같은 시기에 진단을 받은 환우는 강남에 있는 병원에서 표준치료를 받았다. 나와 모든 치료 과정과 시기가 비슷해서 그 녀와 나는 암 치료 중에 서로를 응원해 주는 러닝메이트가 되었다. 항암 치료도 같이 시작하고, 수술도 이틀 차이로 받게 되었으니 인연이라면 매우 특별한 인연이었다. 방사선 치료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지만 그녀는 방사 횟수가 나 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같은 병기의 표준치료임에도 방사선 기계의 연식에 따라 치료 횟수가 달라지기도 하니 최신 장비를 구비한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치료의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치료를 받다 보면 암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있어서 전문가가 된다. 명의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어느 병원에 중성자 치료기가 있고 어느 병원에 양성자 치료기가 있는지 정도는 환자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암의 종류에 따라 방사선 치료의 효과가 큰 암종은 반드시 방사선 기계의 성능을 확인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치료가 어려운 간암이나 담낭암 및 폐암도 요즘은 의료 장비가 좋아져서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의학과 기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암 환자들은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집도의의 수술 실력과 최신 의료 장비 그리고 환자의 살고자 하는 의지 3박자가 어우러지면 말기 환자도 20년 이상을 생존할 수 있다.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기 전, 간호사에게 주의 사항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방사선 치료실로 들어가 상의 탈의 후 기계에 몸을 뉘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 방사선 치료사 둘이 다가오더니 매직펜을 들고 내 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카 뻘 되는 치료사 둘이 진지하게 내 몸통을 중심으로 십자가로 선을 그었다. 방사선을 쪼일 경계선을 그리는 것 같았다. 유방암 환자들이 워낙 많아서 여성의 가슴을 보아도 호기심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젊은 치료사들은 환자가 민망함을 느끼지 않도록 침착하고도 겸허하게 작업을 마쳤다. 목공이 작업을 위해 나무 위에 선을 긋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치료받으러 오실 때까지 선이 지워지지 않도록 유의하셔요.”


방사선 치료는 2주 후에 예약이 잡혔는데 그때까지 이 선이 지워지면 안 된다고 했다. 곧 폭염이 시작되는 7월인데 샤워할 때 비누칠을 하면 안 된다는 말로 들렸다. 그 간 살아오면서 몸에 바디 샴푸며 비누며 샴푸, 린스까지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들을 많이도 썼다. 향이 좋고 매끄럽다며 온몸에 계면활성제인 거품으로 샤워를 했다. 길게 웨이브 진 머리켤에 한 껏 멋을 내느라 샴푸, 린스는 또 얼마나 많은 양을 소비했던가… 그 좋은 향과 보드라웠던 거품들이 내 몸에는 모두 독이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이 참에 잘 됐다. 피부도 디톡스를 하는 거다.’ 


단 2주 만이라도 자연으로 돌아가 화학 약품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보기로 했다. 이미 항암 중에도 입안이 전부 헐고, 피부가 얇아져서 저자극성 환자용 제품들로 샤워 제품들은 모두 바꿨지만 방사선 치료를 하는 동안은 아예 비누 자체를 안 쓰고 물로만 하는 샤워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항암이 끝나고 나니 머리카락도 없는 민머리였고, 피부도 전부 손상돼서, 왠지 화학성분이 섞인 샤워제품을 쓰면 몸에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손상된 피부 세포가 건강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샤워습관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그 간 몸속에 쌓인 항암의 독소들이 피부를 통해서도 배출되는 것 같았다. 땀이 비 오듯 했으니 말이다. ‘찝찝해서 어떡하지?’라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땀을 물로만 닦아 주는 것만으로도 개운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하루에 서 너 번씩이라도 샤워실로 가서 그야말로 ‘맹물샤워’를 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도 없겠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샤워기 물살에 온몸을 맡기고 손으로 피부를 문질 문질 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 간 항암 치료받느라 고생했다 내 피부들아, 건강하게 재생되어라~. 아, 개운하다!”


맹물 샤워만으로도 피부는 이내 맨들맨들해 지고 뽀송뽀송해졌다. 거품 비누를 쓰지 않는다고 피부에 딱히 나쁠 것이 없었다. 되려 뽀드득뽀드득 개운한 맛이 있었다. 화학성분으로 만들어낸 인조 향기보다 내 살 냄새가 더 인간적이고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피부도 숨을 쉰다. 

피부에도 숨구멍이 있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미용 제품들이 몸속에 스며든다. 건강할 땐 몰랐다. 향기 좋고, 느낌 좋고, 값비싼 제품에 브랜드까지 유명하면 그저 좋은 줄 알고 화장품이며 샤워제품들을 미친 듯이 사 재꼈다. 


나의 피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던 것일까? 평생 화장품 사는데 쓴 돈만 따져보아도 값비싼 차 한 대 값은 족히 넘을 것이다. 승무원 시절 스치는 공항마다 면세점에 들러 화장품이나 향수를 사서 모았다. 면세가에 승무원 할인까지 더해지니 웬 떡이냐 싶었다. 고가의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이때 아니면 언제 써 보겠느냐 하며 브랜드 별로 사용해 보았다. 


만약 그 시절 유튜브가 있었더라면 유명 뷰티 유투버가 되고도 남을 만큼의 화장품 덕후였다. 화장대 다리가 부러지도록 넘쳐 나던 것이 화장품이니 말이다. 그것들을 모두 몸에 쳐 발랐다고 생각하니 내 몸뚱이야 말로 화학약품의 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에 걸려도 싸지… '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낯선 남자들의 손에 의해 몸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도 나는 많은 반성을 할 수 있었다. 


우주 항공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360도 회전이 가능한 방사선 기계를 올려다보며 왠지 치료가 잘 될 것 같은 ‘우주의 기운’을 느꼈다. 


일주일에 5회, 2주 간 나는 총 10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하고 병원에서 가까운 암 전문 요양병원도 예약했다. 치료 횟수가 20회였더라면 한 달을 집에 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울의 요양병원에서 지내야 할 뻔했다. 병원 침대가 아무리 좋아 봤자 내 집 잠자리만 할 리가 없었다. 최신 방사선 기계에 치료를 받게 되어 10회만 치료를 받게 된 건 예상치 못 한 행운이었다. 삶은 불행 속에서도 반드시 행운을 제공했다.


암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 불행 속에서도 좋은 의사를 만나고, 좋은 치료 기계를 만나고,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사진 : <a href="https://kr.freepik.com/free-psd/xray-scanner-room-hospital-room-generative-ai_47892241.htm#query=%EB%B0%A9%EC%82%AC%EC%84%A0&position=34&from_view=keyword&track=sph&uuid=112cf567-c688-4cac-be5c-bf3966a0730c">작가 WangXiNa</a>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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