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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Nov 08. 2023

좋은 의사를 만난다는 것

그들을 써전이라 부른다.

누군가 ‘수술은 그냥 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끝나있을 거야.’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딱히 통증도 없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2인실 병실에 누워있었고, 붕대에 둘러싸인 가슴 밑으로 얇은 튜브 관이 하나 연결되어 있었다. 붕대 위로 양손을 가슴에 대고 우선 양 쪽에 가슴이 붙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수술 전과 느낌상 큰 차이는 없었다.


폐가 숨을 멎었다 돌아와서 그런지 숨 쉬는 게 약간 버거웠지만 내가 수술이란 걸 했나 할 정도로 마취의 효과는 훌륭했다. 가슴 밑에 연결되어 있는 배액관을 통해 수술 부위의 잔여 분비물과 혈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니 주치의가 회진을 왔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감시 림프절도 네 개 정도 떼서 확인해 봤는데 림프 전이는 없습니다. 종양은 떼어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완전 관해는 되지 않았고, 종양 속에 암세포가 약간 남아 있긴 했어요.”  


어쩜 의사가 저리도 한결같은지, 종일 수술실에서 환자를 대여섯 명 수술했을 텐데 피곤한 기색도 없어 보였다. 뭔가 전달해야 될 내용들이 있으면 감정 빼고 서론 빼고 본론만 덤덤하게 얘기했다.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전체 얼굴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작고 가는 눈은 그가 예리하고 섬세한 사람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림프 전이가 없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전달할 땐 작고 예리한 눈이 살짝 아치형을 만들었다가도 암세포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엔 본인도 아쉬운 듯 눈꼬리를 살짝 찌푸렸다.


떼어낸 종양 속에 암세포가 살아서 남아 있다는 건 내 몸에 미세 잔존암이 남아있으니 수술 이후에도 재발이나 전이의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만, 림프 전이가 없었다는 건 가슴에 똬리를 튼 종양 속 암세포가 아직 림프로 이동을 시작하지 않았으므로, 역으로 전이의 가능성은 낮다는 이야기도 됐다.


림프 전이가 없다니 일단 3기는 아니라는 이야기였고, 암은 2기와 3기의 확률상 생존율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림프 전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림프 전이가 일어나면 3기 암환자가 되는 것이다.


“선생님, 저 바로 비행기 타도 되나요? 수술 부위가 잘 못 되지는 않겠지요?”


오랜 기간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나는 지면과 하늘의 압력 차이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이 반쯤 남은 페트병이 착륙 후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다. 비행을 하고 나면 내장이 부풀었다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귀가 찢어질 듯 아픈 것도 압력의 변화 탓이다. 수술한 환자가 바로 비행기에 탑승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수술하고 다음 날 미국도 가는데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배액관 떼고 비행기 탈 수 있게 해 주세요, 선생님. 이걸 차고 비행기를 탈 순 없잖아요”


유방암 수술 환자들은 수술이 끝나면 보통 병실에 이 틀 정도 있다가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 더 해 줄 수 있는 치료가 없는 경우엔 집에 가서 회복하라고 약만 처방해서 바로 집으로 보낸다. 나는 퇴원을 하게 되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 처지라서 의사에게 최대한 병실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치의는 3일의 입원을 허용했지만 간호사는 이례적인 일이라며 다른 환자들은 대부분 이틀 안에 퇴원 조치 시킨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물 건너온 환자라, 늘 세심한 배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3일간의 병원 생활 동안 다행히 배액관의 분비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배액관이 꽉 찰 정도로 분비물이 많은 환자들도 있었는데, 나는 배액관의 분비물이 많지 않았다. 주치의가 수술을 깔끔하게 잘해 낸 것이 틀림없었다.


수술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던 주치의의 말 한마디가 나에겐 신의 음성처럼 들렸고 수술이 잘 못 될 거라는 의심은 단 1초도 해 보지 않았다. 나는 주치의가 그냥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믿었다.


환자는 주치의를 무조건 신뢰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주치의가 매우 실력 있는 의사라 믿었던 것은 물론이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눈빛이나 말투 모든 게 존경스러웠다. 그렇다고 주치의가 환자에게 특별히 다정한 타입도 아니고 진료시간은 매 번 단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특별한 라포가 형성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란스럽지 않고, 늘 평정심을 잃지 않는 주치의의 태도에서 자신감과 프로의 내음을 맡았고, 그런 그에게 내 목숨을 온전히 맡겼다.


암은 항암 치료와 수술, 환자의 의지, 이렇게 3박자가 쿵작이 잘 맞아야 치료가 될까 말까 한 병이다. 환우들 중에 수술이 잘 못 되어 재수술이나 재발을 하는 경우도 적잖이 봐 왔다. 수술을 집도하는 집도의를 잘 만난다는 것도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나는 수술 후엔 집도의가 신처럼 보였다.


'사람 생명도 연장시키고,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데, 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동네에서 약만 처방해 주는 의사만 보다가 암 수술을 하는 써전을 만나니 존경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내 생명의 반은 주치의가 살려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원 전 주치의와의 마지막 진료에서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주치의는 수술 부위에 잔존 암세포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는 수술이 끝난 후로부터 약 2주 후에 시작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매일 받아야 하는 치료라서 제주에서 어떻게 받으러 다니나 걱정했는데 지방 병원에서 받을 수 있도록 주치의가 의뢰서를 써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방 병원의 방사선 기계에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치료 중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술한 병원에 내 데이터가 전부 있는 것이 좋기 때문에 서울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매일 어떻게 왔다 갔다 하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지? 호텔을 장기 투숙해야 하나? 하고 걱정하던 찰나에 2인 실을 함께 쓰던 옆 침대 환우는, 가까운 곳에 암 전문 요양병원이 있다며, 자긴 퇴원하면 그리로 간다고 나에게도 추천을 해 주었다. 요양병원의 비용이 다소 걱정스러웠지만 아픈 동안 경제적인 손실은 감안하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던 나와의 다짐을 곱씹으며 수술 이후 진행될 치료 과정에 대한 채비를 마쳤다.


무엇보다 수술이 끝나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전신마취로 자가 호흡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니 수술과 더불어 나의 인생은 두 번 태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딸아이와 엄마가 보고 싶었다.



Photo by Sasin tipc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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