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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Sep 18. 2020

직장인에게 라인은 존재하는가?

담배 안 피우는 나도 나가서 이야기를 들었던 시절.

지금 직장, 지금 직업을 갖기 전 나는 식품 회사의 마케팅 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뭐가 뭔지 모르고 갓 졸업했을 때지만 의욕만은 활활 넘쳤다.


부서원 다섯 중 유일한 여자지만, 생수통 나르기, 복사, 부서장님 커피 타기, 부서 예산 수립(이라고 쓰고 결제 올리는 일을 도맡음)까지 이것저것 못하는 것 없이 잘했다. 단 하나,  내 제품의 마케팅만 빼면 완벽했다.


마케팅 전공자는 아니지만, 입사에 성공했고 나름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제품도 좋고 열심히만 하면  매출이 발생할 수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안 팔릴까 머리를 굴렸다.

내가 분석해 본 실패의 이유는 바로 영업 사원과 안 친했다는 것. 그들이 팔아주지 않으니 매출이  늘 제자리였다.


영업 부서는 8층. 마케팅을 포함한 다른 부서는 2층에 있었는데 그 여섯 개의 층을 올라가는 게 왜 그리 부담스럽던지.

같이 있는 대리님께  고충을 털어놓으니, 너도 이제 1층에 담배 피우는 곳에 같이 따라가잔다.  그곳으로 말하자면 담배 피우는 자들의 천국이며, 가끔 회사의 중요 정보가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니 거기에 가야 정보가 있고 친목도 도모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끄덕  고갯짓을 하면 스프링처럼 대리님을 따라 나갔다. 이미  영업 사원 몇 명과  다른 부서원들이 있는 그곳에  담배도 안 피우는 나도 몇 번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갈수록 참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일도 일이지만 건강까지 해치며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최근 잠실 근처의 큰 회사 옆을 지나가다가  그곳에도 일렬로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회사원들에게는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할 장소는 필요하구나 싶었다.  금연 문화에서 내몰린 흡연자들은 오늘도 바깥을 서성인다.

 


우리 부서가 A라면  우리에게는 회사 차원에서 경쟁 부서 B가 있었다. 그 부서는 우리 부서를 늘 경재 상대로 생각하고 부서장들끼리도 농담 반, 진담 반 경쟁을 부추겼다. 그러다가 그 부서에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케팅에 여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쯤 어린데 딱 봐도 꽤 당차 보였다. 들어오자마자 좋은 제품을 받기도 했고 폭풍 친화력을 보여줘  영업 사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금세 우리 부서 A라인과 그 부서의 B라인이 묘하게 형성되었고, 영업 사원들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 물건을 팔아줬다.

결과는? 그녀는 입사 그다음 해에 사내 마케팅 스타상을 수상했다. 최근 뉴스에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B부서의 부서장님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럼 우리 부서 A는? 나는 그녀와의 비교당하기가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회사 줄타기의 암투 지겨워 퇴사를 했다.  부서장님은 정년 퇴임으로 회사를 나왔고 부서원들은 모두 이직하여 이제  찾아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


라인은 존재한다. 오래가는 라인이 아닌 곳에 선 것 같다면,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영원한 직업도 영원한 직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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