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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Sep 26. 2020

쩌리가 추측하는, 보스에게 사랑받는 법.

어느 쩌리의 고백


쩌리: 중심이 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비중이 적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속되게 부르는 말.
-Daum  국어사전-

                                                            


지금의 회사와 이전 회사  통틀어  16년의 직장 생활 중  아이 낳고  쓴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등 빼고  대략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윗사람이라  부를  책임 있는 중간 관리자를 딱 한번 했다.

다들 내가 자리운이 지지리 없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새로 자리가 비어 적임자 물색할 시기가 오면 다들 이번에는 나라며 추켜 세우다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간 순간 자기 일도 아닌데 나에게 몹시 미안해했다.


 첫 직장은 2년만 다녔으니 그럴 수 있다. 그 후  여러 직장을 전전할 때는 당연히 떠돌이였으니 나라도 책임 있는 그런 자리는 주지 않을 것이다.


코 때문에 나왔던  이전 직장에서는  ('퇴사는 코에게 맡겨봐' 편 참고) 마침  승진 대상이었고, 진짜 내가  갈 자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부서장님이 다른 지점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와서 그 자리는 그녀를 줘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 S 씨가  이 자리로 올 거야. 에너지 드링크 씨 어때?"

"그래도 여기서 오래 근무한 건 저 아닌가요? 제가 이  업무는 잘 압니다."


그 말이 나온 것은 부서 회의 시간이었다. 다들 내 말을 듣고 고개도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부서장이 은근슬쩍 묻는 척하는 것은 그냥 통보일 뿐이라는 것을. 애초에 내 의견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며칠 후 혼자 일을 하는 공간에 , 문을 열고 부서장님이  들어왔다.


"네가 어디서 다들 있는 자리에서 딴지를 거냐? 내가 말하면 들어야지."


이제 꽤 오래돼서 저 말 밖에 기억이 안 나지만  문이 닫히고 그분이 나간 후에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채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회사에도 들어온 지 어언 8년. 출산과 육아를 두 번 경험하고 돌아온 나에게 책임 자리는 역시나 남의 떡이었다. 물론 딱 한번 책임급의 일을 1년간 했었다.  알고 보니 그 파트에 다섯 명이 관두고 난리도 아닌 시절이라 누구도 그 자리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육아 휴직 후 복직하면서 그 자리로 배치되었고 나는 뭣도 모르고  그 일을 해냈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이제 익숙해지고 안정화가 되자, 마치 단물 빠진 껌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반 개미 일 자리로 배치받았다.

그때 큰 아이와 둘째가 직장 어린이집을 다녀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이들 졸업할 때까지만 남을 거야'라고 결심하면서.


 꽤 오래 쩌리로 살다 보니 나 같이 하면 절대 보스의 사랑 따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내가 한 것 반대로 하면 당신은 보스의 사랑을 얻을 것이다!


첫째, 나는 팀원들을 너무 배려했다. 그들의 어려움을 막아 주려고 팀원과 보스 중간에서  애를 썼다. 팀원 편을 더 들게 되면 가끔 보스의 심기도 거슬렀다. 그들 생각하지 말고 너 할 일 하라는데 도저히 무시가 되지 않아 나는 팀원들을 더 옹호했다. 지금도 부서 막내들에게는 인기인이 되었다.


둘째, 나는 보고를 너무 안 했다. 중간중간 계속 보고를 했지만 사소한 것은 내 선에서 막았다.  그 일이 보스를 피곤하게 할 것 같았다.  사랑받는 그들은 진짜 작은 것도 보고 하더라. 그래서  그들은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셋째, 나는 일을 쓸데없이 열심히  했다. 안되면 되게 하려고 애썼고 그러다 보니 못한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묵묵히  일 했다.  '힘들다', '못하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 일을 빼주더라. 그냥 힘들다고 말하면 되는 거였다.


넷째, 나는 상사든 아래 후배든 항상 같은 톤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사랑받는 그들은 말투가 친절했다. 단, 윗사람에게만.  보스에게 하는 말투와 우리들에게 하는 말투가 달랐다. 그래서 보스는 늘 그들을 더 신뢰했다.


다섯째, 나는 너무 명랑했다.  내가 무슨 캔디라도 되는 냥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모드로 일이 힘들지언정 표정은 명랑하고 가볍게  다녔다. 그때 세상 무겁고 골치 아픈 듯한 표정을 지었어야 했다. 진지한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진지하게 앉아서 세상 힘든 표정으로 하루에 1,2개씩 일을 처리하면 일을 되게 잘하게 보인다. 나는 웃으면서 일을 5개 순식간에 처리했더니 빨리 일하고 노는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인 나의 견해다. 난 지금도 쩌리니까 아직은 쩌리 입장만 알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 더도 덜도 아니다.

그냥 나만의 독백, 나만의 성찰이다.


오늘도 성격 좋고 잘 웃고, 후배와 친하게 다니는 나는 쩌리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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