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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s voice Oct 21. 2021

11. 말만 들어도 벌써 피곤한 얘기

-양성평등, 어따 쓰게?-

한남, 꼴페.. 이런 단어 어떤가요? 분노와 혐오가 전달되죠. 이 주제를 읽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어우 피곤해 ‘ ‘나랑은 딱히 상관없는 문제 같은데 ‘... 

물론 극혐 얘기만 하다 끝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얘기만 꺼내도 화내는 분들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남 얘기만은 아닌 이 주제를 차근차근 생각해볼 기회를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양성평등 이슈는 남과 여 둘 중 하나를 비난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를 비난하는 게 우선되는 것도 아니고요.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하는 다양성과 포용이 중요한 시대이니, 적어도 개인 취향 존중의 관점으로 이 주제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독립서점, 들어보셨나요? 뭐하는 곳이냐고요? 이걸 광고하는 카피를 만든다면 저는 이렇게 쓸 겁니다. 그곳에 ‘그 책’이 있나요? 내 취향에 맞는, 나만의 색채를 반영하는 책들만 모여있는 곳입니다. 주제별 서점이죠. 

비스포크 가전 시리즈. 무지 비쌉니다. 하지만 글라스 종류, 색깔, 사이즈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합 가능한 냉장고입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모듈식 조립 방식을 통해 집집마다 다른 라이프 스타일에 맞출 수 있는 다양한 품목별 제품을 뽑아냅니다. 삼성전자의 소비자 가전 부문 매출을 책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넷플릭스는 왜 뜨기 시작했을까요? 더 이상 우리에게 본방사수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 취향에 맞는 것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즌별 몰아보기 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 해주는 넷플릭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2030 세대의 중요한 특징에 대해 시장은 ‘개인주의, 취향 존중, 선택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공략하면 지갑이 열린다는 거죠.           

이런 밀레니얼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똑같은 학교 다니는데 넌 왜 걔처럼 못하니

-넌 남자가 돼 갖고 왜 그렇게 눈물이 많은 거지?

-대학 가면 다들 연애하던데 너는 뭐하니

-다들 그거 좋아하던데 넌 참 별나다~

-네가 아무래도 큰 딸이니까 집안일에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다.      


말만 들어도 분위기 싸해지네요.... 


개인의 특성, 능력은 ‘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 간 차이를 만드는 기준은 ‘성’이 아니어도 아주 많으니까요. 그러니 ‘개인의 특성, 능력 간 차이가 (개인 차보다) 성 차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된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性으로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그 기준으로 개인의 특성/능력을 판단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다음의 자료는 불편하지만 익숙한 우리의 인식들을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CkPXiUwgSM


같은 모습인데 왜 다르게 해석될까요? 무엇이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리더십 있는 여성은 저평가, 때로는 비난받기도 합니다. 전형적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답지 않다고 평가되는 거죠. 동시에 경쟁하고 리드하려 하지 않는 남성은 저평가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 리더십은 성에 따라 다르기보다, 개인에 따라 다른 능력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에 대해 성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겁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개인적 삶의 영역, 공공적 삶의 영역에 속해서 살아갑니다.

두 영역 각각의 특징, 개념은 보는 바와 같이 서로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인간이라면 두 영역 모두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화, 교육, 훈련을 받아야 균형 잡힌 인간이 됩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일반적 전제를 감안한다면, 남녀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영역의 균형과 성숙이 기본이겠지요.      

문제는 인간 모두에게 요구되기 전에 먼저 ‘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다르게 요구, 기대, 반응, 평가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별 분화라고 합니다. 남녀가 다르니 각각에게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방식으로 왜곡되어 활용되기도 합니다만, 그 얘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회적 영역>

✔ 요새는 사적, 공적 영역할 것 없이 모두가 모든 영역에서 다 잘하기를 기대하니 삶이 무겁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다 성공한 사람이 제일 멋있다 하죠. 

그러나 우선적으로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그 순위를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다른 영역에서 성공했다 해도 비난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사는 남편, 아이들 학교 준비물과 때에 맞는 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출장 갔다 돌아온 엄마는 주눅이 듭니다. 근거 없는 피해의식인가요? 


✔ 둘 다 잘하면야 좋죠. 하지만 둘 다 잘 해내기 쉽지 않다면 뭘 먼저 버리는 게 좋을까요?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만, 성에 따라 덜 중요하다 말하는 영역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 반차를 쓰거나 퇴사를 해서라도 아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이도록 기대받는 것은 엄마인가요 아빠인가요? 아무도 요구한 적 없는데 엄마가 알아서 그렇게 한 걸까요? 아빠의 회사에서 오늘도 진행되는 야근과 회식 앞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생일파티가 당당한 칼퇴 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여직원들이 임신하면 사직부터 생각할 게 뻔하니 아예 뽑질 말아야 하는 걸까요? 여성들이 회사를 쉽게(?) 생한다면 그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갖고 사는 게 편하다 생각하는 무개념' 때문일까요? 아니면 여성들에게는 회사가 가정보다 덜 중요하다는 분위기에 익숙해져(압박받아)서 먼저 포기하는 걸까요? 아니~ 둘 다 원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요새는 많이 변하지 않았나?  

맞아요. 많이들 생각이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오랜 시간 동안 ‘상식’이었던 가치가 바뀌는 데는 또다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이 정도면 됐다 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있다는 얘기죠. 그러니 이 얘기는 고만 좀 하라고 말하지는 말아야죠. 

-꼴페가 문제라 화나신 분~!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왔던 사람들이 있기에 이나마라도 변한 거고, 모든 남성들을 다 싸잡아서 비난하려는 게 아니니까 진정진정... 

-한남들 다 똑같다 화나신 분~! 이렇게 약하게 말하면 안 된다고요? 그럼 죽자고 싸우고 투쟁하는 방식으로만 해도 변하겠어요? 차근차근 서로의 생각을 좀 나눌 수 있는 분위기도 같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요?      

‘사회가 ‘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요구하는 정체성‘  이것이 Gender인데요. 

개인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가, 어떤 개취를 보여주는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가에 주목하기보다

(개인이) 남자로서, 여자로서 ‘적절한’ 능력을 가졌는가, ‘적절한’ 취향을 보여주는가에 집중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체성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 요구와 기대의 무게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인 전기는 사회적 규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사회가 요구, 기대하는 대로 살기 쉽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목적,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죠. 그래서 개취를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유행에 민감합니다. 다들 연애, 다들 여행, 다들 ~~~ 하는 것 같아 눈치 보고, 인스타 맛집 나만 빼고 다 간 것 같아서 굳이 찾아가기도 합니다. 나는 안 가본 그 집, 늘 대기시간 1시간이네요. 졸업 이후 다들 취업한 것 같은데 나만 못한 거 같아서 학교 늦게까지 다니는 화석 학번들은 출석 부르는 것도 창피합니다. 안 그래도 뭐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새롭게 시작되는 각종 책임과 역할을 해내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다 쏟는 시기입니다. ‘성’을 비롯해서 받지 않아도 될 압박을 받는 영역들이 늘어날 수록 무기력해지거나 사고할 힘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는 어떤가요? 

개인의 특성에 상관없이 성역할에 의해 규정되고 그 규범이 영향을 미칠수록 압박스러워 지는데요. 그에 부합되지 않는 이들에게 평가와 비난, 차별과 억압이 가해지는 사회일수록 대상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스트레스를 같이 받게 됩니다. 여자다운 여자를 기대한다는 건 남자답지 않은 남자도 압박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연애할 때 돈 잘 내는 오빠가 인기를 끌수록, 결혼할 때 남자가 집 한 채는 해와야 하는 분위기일수록 여자들은 여자다운 외모, 직업 등을 통해 트로피 역할을 잘 해내도록 요구받고 개념없는(?) 행동을 할 때 더 심하게 물어뜯기게 됩니다.....


성별 분화, 젠더 이슈가 특정 개인과 집단만의 문제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성이라는 기준에 의한 정체성을 개인에게 요구하는 사회는 다양한 개인의 강점보다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렇게 사고하는 습관이 우리 사회 전반의 유연성과 균형, 다양성을 방해합니다. 남자도 가정적이어야 하고, 여자도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거죠. 

      

양성평등은 모든 인간이 ‘자신’ 답게 살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개인이 개인답게, 인간이 균형잡힌 존재가 되기 위한 가치인 거죠. 

사회가 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부여한, 기대하는, 요구하는 정체성 Gender에 의한 성별 분화 때문에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성별 분화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양성평등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함께 상호작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분노부터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자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 주제가 우리에게 의미있는,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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