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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Kim May 11. 2021

아이와 나의 바다(아이유 IU)
가사 해석

내 안의 아이에게 건네는 메시지

아이유를 좋아한다.


아이유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는 가수는 분명 있지만, 자신의 솔직한 내면과 성장하는 과정을 노래에 담아 불러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 '마시멜로'를 부르던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 


지난 3월 신곡 앨범이 발표되었고 으레 타이틀곡이 각종 차트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때,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몰입해서 듣게 되는 노래들이 있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 곡이었다. 


음악적 요소야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특히 가사가 하나의 완벽한 문학 작품(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며칠 동안 수백 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느꼈던 점들을 가사 해석과 함께 정리해두고 싶었다.


https://youtu.be/TqIAndOnd74


https://vibe.naver.com/album/5211473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가슴 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큰 사고를 겪었거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었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죠.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잊히거나 치유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아물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이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겪었던 큰 상처와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서도 '내면아이' 상태로 남아있다고 하죠. 비슷한 상황이 되면 몸은 분명히 성인이지만 그 시절 어린아이 때와 같은 모습으로 반응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순간의 감정을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어딘가에 있는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어른이 된 내가 보다듬고 사랑해 줘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아요. 처음엔 부정하거나 외면하게 되죠. 


꼭 내면아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할 때, 즉 자존감이 낮아질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들에 더 힘들어지곤 하잖아요. 그런 내 마음을 '가난하다'라고 말해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가난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래서 노래가 시작하는 배경도 '밤'일 겁니다. 실제로도 밤에 그런 부정적 감정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마음이 가난해질 만큼 내가 나를 외면하는 나의 심리상태 자체가 '밤'인 거겠죠.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봅니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예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내 마음속 나를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습관처럼' 눈을 감는다고 표현한 걸 보니 아마도 처음 시도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게 두려워 자꾸만 피하고 눈을 감아왔던 거예요. 그래요, 처음엔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 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쌓이는 하루만큼 더 멀어져 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이미 나는 어렴풋이 내 안의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어요. 그 아이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았네요. 오히려 내일을 기다리며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였어요. 


저도 22개월 된 아들을 하나 키우고 있는데 정말 그래요.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이렇게나 완전하고 행복한 존재로 태어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아이에게는 하루하루가 늘 신나고 재밌거든요. 고민도, 갈등도, 두려움도 없이 매일을 선물같이 즐길 뿐이에요.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픔도 어려움도 겪어내며 성장했는데, 어른이 되면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내 마음은 여전히 아이 같아요. 아직도 여리고 상처받고, 쿨하게 넘어가는 건 겉모습일 뿐 속으로는 늘 아파하죠. '겨우 이런 나'가 되려고 그렇게 아파한 건 아닐 텐데 말이에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는 걸요. 하루하루가 지나며 외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와 '내 안의 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더는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합니다. 


어린 날 내 맘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설렘으로 차오르던 나의 숨소리와
머리 위로 선선히 부는 바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내 안의 나'와 마주해봅니다. 맞아요, 내 안에는 바다처럼 넓고 푸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네요. 아, 그런데 지금은 그것마저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어요. 분명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무언가가 내 안에 있었는데 이제는 숨소리와 바람만 남았어요. 사실상 다 사라져버린 거죠. 그렇지만 나를 들여다보는 시도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다음을 보시겠어요?


(사족이지만 첫 소절의 '아물지 않는'이란 표현에 '가물지 않는'으로 라임을 맞춘 것도 개인적으론 참 좋았어요. 이런 게 시거든요.)


파도가 되어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어
작은 두려움 아래 천천히 두 눈을 뜨면


내 안의 나를 마주하게 되니 서서히 욕구가 생깁니다. 다시 바다에 물이 차고 파도가 쳤으면 좋겠어요. 그 파도를 타고 어디든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요. 그 마음에 용기를 내봅니다. 앞에서 습관처럼 감아버렸던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해요. 


지난날 나를 마주하지 못하게 했던 건 사실 '작은 두려움'이었어요. 눈을 뜨고 나면 별것 아닌 게 되는 거죠. 자, 이제 눈을 떠서 나와 마주했더니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노래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선 너머에 기억이 나를 부르고 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목소리에


세상이 선물처럼 느껴져본 적 있으신가요? 감았던 눈을 뜨고 내 안의 나와 마주하니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노래가 시작하던 배경은 '밤'이었지만, 이제는 눈부실 지경이에요. 나 스스로 나를 의심하고 눈을 감곤 했었는데, 이제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답해 줄 용기가 납니다. 


스스로 경계선을 만들고 가두어 두었던 내 안의 나, 이제는 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쌓여가는 하루하루만큼 멀어지고 잊혔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진정한 화해가 시작됩니다.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요. 노래를 들어봐도 웅장한 코러스와 아이유의 고음이 절정을 이루죠.


내 안에 희미했던 파도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어 했던 바람이 이루어졌네요. 용기를 내어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어요. 그건 연어처럼 물결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에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파도에 휩쓸려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은 자유로워요. 습관처럼 눈을 감아버렸던 내가 더 이상 아니거든요.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맞아요, 이 구절이 이 노래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줍니다. 더욱더 현실적인 노래가 됐어요.


앞선 구절에서 노래가 끝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정의 고음과 함께 '그래, 나는 되돌아가지 않아!' 하고 끝나버렸다면 그건 마치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속 이야기겠죠. 결혼 이후가 진짜 인생입니다


이 노래의 미덕은 그래서 마지막 소절에 있어요. 

첫 소절과 같은 음으로 조용히 읊조립니다. 


인생은 한순간의 깨달음만으로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거든요. 여전히 삶은 힘들고, 나는 나 자신에게 눈 감는 날이 또 찾아올 거예요. 하지만 달라진 점은 이제는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인생이에요. 인생은 절대 다람쥐 쳇바퀴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분명 성장하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떠올려봤어요. 


앞선 글에도 적었지만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방치되었던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는데, 이 노래 가사처럼 제 인생도 내면 아이를 발견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힘들고 아픈 과정이라 외면해오고 있던 내면아이를 용기를 내어 똑바로 마주하게 된 후로부터 삶이 더욱 담백해졌다고 할까요?


내면아이에 관한 이야기도 앞으로 꼭 글로 써보고 싶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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