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절정의 르네상스, 16세기 초 피렌체
드디어,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절정기라 할 수 있는 16세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곰브리치는 이 시기의 르네상스를 설명하기 위해 유럽을 세 지역('토스카나와 로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독일과 네덜란드')으로 나누어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당시 위대한 미술가들의 업적과 그 위상을 짐작케 한다.
토스카나는 피렌체를 주도(主都)로 하는 이탈리아 중부의 주로써 우리는 르네상스와 피렌체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즉, 토스카나는 르네상스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라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4대 거장의 고향이니 더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럼 곰브리치가 선정한 첫 번째 주인공 '다 빈치'부터 살펴보자.
다 빈치의 대표작은 단연코 <최후의 만찬>과 <모나 리자>이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위대한 작품으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부속 건물 인 수도원의 식당 벽에 그려져 있다. 당시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였으며,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쭈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태복음 26장 21~23절). 12제자 중 한 명인 '유다'의 배신의 순간을 표현한 이 작품은 기존의 최후의 만찬 작품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혀 12제자를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시켜 완전한 대칭을 보여주나 결코, 도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으로 모두 다르게 표현하여 리얼한 생동감을 더했으며,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 채 오른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는 등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교리에 따른 표현 대신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조명하면서도 주제가 갖는 사상적, 정신적인 진실을 함께 표현하려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성이나 소묘의 기술과 같은 기법상의 문제를 넘어서서 인간들의 행위와 반응에 대한 다 빈치의 그 깊은 통찰력과 우리 눈앞에 한 화면을 생생하게 전개시켜 보여준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그려놓은 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붓 한번 대지 않고 팔짱을 끼고 하루 종일 서 있곤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색의 결과인 <최후의 만찬>이야말로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적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_P298 / Story of Art.
<최후의 만찬>보다 훨씬 더 유명한 '다 빈치'의 작품은 리자라는 이름을 가진 피렌체의 한 부인의 초상인 <모나 리자> 일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 작품의 설명에 앞서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모나 리자>와 같이 지나치게 유명한 명성은 그 예술 작품을 위해서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엽서나 광고에서조차 이 작품을 보아왔으므로 그것을 실제 화가가 살과 피를 가진 실존 인물을 그린 그림으로 참신한 눈을 가지고 보기 어렵다. 이 그림에 관해서 아는 것이나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_P298 / Story of Art.
'조르조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의하면, 이 그림은 1503년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라는 상인이 새로 지은 집 거실에 걸어 두기 위해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의뢰해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의뢰자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보관하며 틈틈이 작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인 유화기법을 사용했으며, 윤곽선을 부드럽게 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하여 엷은 안개가 덮인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특히, 인물의 입가와 눈가에 두드러지게 사용하여 <모나 리자>만의 애매하고 미묘한 미소를 띠게 한다. 이것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게 만들어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는 희미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색채에 의해 피사체를 빛과 그림자로만 표현함으로써 진짜 살아있는 듯한 입체감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작품의 신비로움을 더하는 배경 또한 수평선을 모델의 목 높이가 아니라 그녀의 눈과 일치하도록 의도적으로 선택하였고 지평선을 비대칭으로 그려 인물을 주변 풍경과 밀접하게 연결하여 그 효과를 배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초상화를 보았다. 왜냐하면 미술가가 형상을 보존함으로써 그가 묘사한 사람의 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위대한 과학자인 다 빈치는 태초의 형상 제작자들의 꿈과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그의 마술 붓으로 색채 속에 불어넣는 주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_P303 / Story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