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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Mar 21. 2024

요즘 엄마의 푸념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못하는 게 많지?

옛날에 비하면 (그 옛날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세상이 엄청 살기 좋아졌고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에 비해 훨씬 영특해지고 신체 발달도 빠르다고 한다. 요즘 공부 좀 한다는 초등학생들은 죄다 2,3년씩 선행학습을 하고 있어서 5학년이면 벌써 중1, 2학년 수학 진도를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 때는 (벗어날 수 없는 라떼 지옥 ㅋㅋㅋ) 첫 월경을 중학교 입학한 이후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 5학년 무렵 시작하고 성장 속도가 빠른 아이들 중에는 저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 속도도 빨라졌고 아이들도 영특해지고 세상 살기도 편하고 좋아졌는데 왜 이렇게 애들이 못하는 게 많은 것 같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가만히 따지고 보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에 비해서 스스로 못하는 게 참 많단 말씀이다.


이게 세상이 예전보다 위험하고 흉흉해져서 그런 건지 요즘 부모들이 자식을 과잉보호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독립이 점차 늦어지는 추세라 그런 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건 우리 집 아이들만 해도 주위에서 또래 친구들보다(주변에 5, 6학년인데도 혼자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아이들이 꽤 있었음.) 꽤 독립적이라고 하는데도 내가 해줘야 하는 일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 중2, 중1, 초4로 모두 미성년자인 데다가 키도 나보다 작고 힘도 나보다 약하니 내가 할 일이 더 많은 게 억울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이따금씩 '나는 어릴 때 엄마 도움 없이도 혼자 이런 걸 했는데 얘네는 왜 못하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건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는 라떼족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라떼 찾아봤자 듣기 좋아할 사람이 없으니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고 브런치에 와서 이렇게 하소연하는 것임.


일단 내가 어릴 때는 아무리 떠올려봐도 엄마와 같이 숙제를 하거나 엄마가 대신 준비물을 사다 주는 일이 결코 없었다. 지금은 내가 매일 학교 공지 앱을 통해 알림장을 확인하고 아이들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야만 한다. 옛날에는 학생 스스로 챙겨야 했던 숙제와 준비물을 이제는 학부모도 앱을 통해 공유하기 때문에 안 갖고 오면 "부모탓"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알림장에 떡 하고 "월요일 수학 2단원 시험"이라고 쓰여있으니 이걸 본이상 공부하라고 한 마디 안 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 부모도 아이도 스트레스. 차라리 안 보고 모르고 싶은데......


그리고 작년에 딸아이 은행 통장과 현금카드를 만들 때 보니 이게 애 혼자되는 것이 아니더라. 아직 미성년자라서 내가 대리인 되어야 했는데 내가 미국 국적자라서 절차가 조금 더 복잡해서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 결국 만들긴 만들었는데... 어린이나 청소년이 은행에 저금 좀 하겠다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긴 했다. (대포통장 이슈때문에 통장 개설이 매우 까다로워졌다고 함.) 왜냐! "라떼는 안 그랬거든!" 나는 국민학교 4, 5학년 때쯤 혼자 농협에 가서 통장을 만들었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엄마가 은행까지 동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 혼자 만든 통장에는 세뱃돈이 조금씩 쌓여갔고 통장에 숫자가 늘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부모님 생신이나 결혼기념일에는 돈을 인출해서 그 당시 어린이에게는 꽤 큰 금액의 선물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나 자신이 꽤나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그다음 나름 "내가 꽤 컸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 바로 스스로 밥을 해 먹거나 차려먹을 때인데 나는 국민학생 때 이미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었음. 물론 뒤져 먹고 찾아먹고 알아서 먹는데 일인자였던 오빠의 영향을 받았을 거다. 엄마 없는 집에 친구를 데려와서 내가 끓인 라면을 대접했을 때 나는 '이 정도면 이제 혼자도 살 수 있겠는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라면에 계란까지 추가했으면 말 다했지. 물론 계란 껍데기를 깨트리다가 흰자가 냄비 겉면에 질질 흘러내려 단백질 탄내가 진동을 하고 껍질 조각 한두 개쯤 국물 속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현재 컵라면 정도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수준이고 딸이 중1 끝나갈 무렵부터는 봉지 라면도 끓여 먹기 시작하더라. 물론 솔직히 내가 허락만 한다면 셋 다 냄비에 라면을 끓이는 것도 불가능 할리 없다. 그냥 내가 무서워서 그렇지.


작년 막내가 초3일 때 성당에서 첫 영성체반 교리를 들을 때는 또 어땠는가? 새로 오신 보좌신부님이 아주 꼼꼼하셔서 이번 첫 영성체반은 아주 제대로 교육을 하실 거라고 엄포를 놓으셨고 9월 중순까지 아이는 매주 교리 수업이 있고 부모는 격주로 교육이 있다. 주 1회 평일 미사(새벽 6시)도 참례해야 하고 기도문도 외우고 성경 필사도 하고 가족이 성지도 방문해야 한다. 암튼 막내 덕분에 나도 꽤 거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불평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그저 뭐랄까..."라떼는" 부모 교육 이런 건 없었단 말이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때 친구를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6학년 때 내 발로 첫 영성체반에 들어갔다. 나의 세례식날 엄마와 할머니가 와주시긴 했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나 스스로 알아서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종교활동조차도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어찌나 많은지 애넷맘인 나는 심지어 그걸 네 번이나 해야 했음. ㅠㅠ


암튼 요즘 세상이 좋아지고 편리해진 데다가 심지어 옛날처럼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들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요즘 엄마들이 약해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정신상태가 글러먹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하나씩 따져봐도 옛날 아이들에 비해서 요즘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고 (자의든 타의든) 이 모든 것들을 아빠보다는 엄마가 해줘야 할 확률이 200%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게다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로 애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저렇게 키워야 한다 난리통이라 내 의지대로 꿋꿋하게 애 키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니 엄마의 일을 덜고자 한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아빠도 한발 물러나서 뒷짐 지고 "애들은 그냥 놔두면 돼."같은 소리만 하지 말고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호소한다. 얘들아, 제발 엄마 좀 그만 찾고 아빠한테 가보렴. 아빠 침대에 누워 게임하고 계시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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