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얼굴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언제부터 이렇게 생겼던 걸까? 내가 너무 늙어버렸다던가 몸무게가 달라졌다던가 눈썹이 짝짝이라던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나의 외모에 대한 미적 평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냥 평생 이 얼굴로 살았으니 익숙할 만도 한데 내 얼굴이 생판 남처럼 눈에 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내 얼굴뿐이 아니다. 나로 살아온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을 때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것들을 좋아하고,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지만 그 어느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작년에 문장 완성 심리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__________ 할 때 행복하다."라는 문장에 빈칸을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문장들과 달리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분명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 텐데 새하얘진 머릿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평소 무엇을 할 때 행복하더라?'에 바로 답할 수 없던 그 순간 나는 난생처음으로 나 자신이 너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당장 하루하루 해야 하는 일에 충실한 삶을 살다 보면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 거지?' 하면서 말이다.
부모가 원하는 자식으로 살기 위해 애쓴 적도 있었고, 배우자에게는 너무 형편없는 파트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고, 자식들에게는 버팀목이 될만한 든든한 부모가 되려고 버텼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한 구성원, 친구들이 기대하는 즐겁고 유쾌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가끔 나는 위의 역할들 속에서 길을 헤매고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어디 나만 이런가? 세상사람 모두 다 그런 거 아닌가? 하다 보면 어느덧 나의 시선은 우리 아이들을 향한다. 부모가 되고 가장 힘든 것은 출산, 모유수유, 잠재우기, 학교 보내기 같은 것이 아니다. 자식을 나와 다른 타인으로 인정하고 대하는 것, 바로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부모는 자녀의 인격과 개성 그리고 자유를 억누르게 되고 어느새 나의 틀에 맞춰 자식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도 결국 그런 부모에 지나지 않는다.
자식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겠다는 욕심으로,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피하게 해 주겠다는 오만으로 그들을 나의 일부처럼 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내 자식이고 아직은 미성년자라지만 그 아이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다른 꿈을 꾸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혹시 잘못될까 봐...'(뭐가 그렇게 잘못될까?), '더 잘 되라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서 잘돼 봤자 나처럼 되겠지)가 항상 내 발목을 잡는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점점 멀어지는 아이를 바라보며 분리불안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 또한 아이가 아니고 어른인 나였다. 내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나는 결코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으면서......
누가 그러더라. 신이 인생사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자식을 보냈다고...... 결국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고 나 자신도 나답게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래!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가보자! 나는 내 아이들이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보다 자신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니 이제는 아이들의 여정을 조금 더 담담히 지켜보며 나의 불안과 기우를 그만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과 건강한 거리 두기를 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한 발짝 다가가 조금 더 친해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