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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Mar 07. 2024

드럽고 치사해서...

사람들은 흔히 더럽고 치사한 상황에서 "드럽고 치사해서..."라고 뒤끝을 흐리며 말한다. 그냥 이 한 마디는 모든 것을 정리해 주며 우리 모두는 이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정말 입에 착 달라붙는 말이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나 저마다 더럽고 치사한 상황에 놓여봤을 것이고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더럽고 치사해서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경험이 수두룩하다. 부모 둥지 안에 살 때는 내 뜻대로 할 수 없고 부모를 따라야 하는 것 마저도 더럽고 치사해서 빨리 독립할 꿈만 꾸었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살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럽고 치사한 상황을 넘기며 해방될 날을 꿈꿨다.


물론 그때 나의 생각이나 선택과 행동들이 다 옳았던 것만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모를 벗어나 독립하고 싶어서 만세를 부르며 집을 떠났지만 그때 한 2년만 더 부모 슬하에 있었다면 꽤 많이 절약하고 혹독한 빚더미 인생이 조금은 늦게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부모와 함께 사는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였는데 애송이였던 나는 그때 눈에 뭐가 씌었는지 그저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경제적인 면을 따졌을 때 굉장히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솔직히 그 2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다고 추억한다. 평생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보냈던 날들로 소꿉장난하듯 밥을 해 먹고 아직 학생이었던 남편이 공부할 때면 옆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샴쌍둥이처럼 한 몸이 되어 붙어 다녔다. 2년 후 아이가 생겼고 그 후로는 아이가 줄줄이 생겨 다시는 그런 꿈같은 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 경제적인 손실만 제외하면 무리해서 독립했던 것도 뭐 그리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고3 때부터 쉬지 않고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면서도 더럽고 치사한 순간은 쉴 새 없이 찾아왔다. "남의 돈 벌기 어렵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정말 돈을 거저 주는 직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부모한테 용돈을 받는 편이 훨씬 덜 더럽고 치사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돈을 주는 고용주는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충분히 나를 활용하려 들기 때문에 오랜 직장 생활은 나의 몸과 영혼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오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서른이 되기 전에 그 꿈을 이루게 된다. 물론 이 선택 역시 험난한 파란곡절을 안겨주었지만 자영업자로 살았던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으니 후회는 없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있어 적당히 더럽고 치사한 순간은 꼭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절실한 마음만이 사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차피 더럽고 치사한 순간의 연속이다. 내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서, 내 성적이 우수하지 않아서, 내 실적이 목표에 미치지 못해서, 내 가방이 명품이 아니라서, 내 차가 연식 있는 국산차라... 기타 등등의 이유로 우리는 쉴 새 없이 더럽고 치사한 꼴을 당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유난하다고들 하지만 세계 어딜 가나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것들만이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럽고 치사해서...'라고 낙담하는 순간 우리는 결심을 하고 투지를 다지기도 한다. 내가 성공하기만 해 봐라, 내가 살만 빼봐라, 내가 성인만 돼 봐라, 내가 독립만 해봐라, 내가 건강해지기만 해 봐라 등등... 이루지 못한 찰나의 다짐일 말정 나는 분명 그때 뜨거웠다.


더럽고 치사했을 때처럼 열정과 투지가 끓어올랐을 때는 없었다. 삶이 여유롭고 넉넉하고 꿀 맛 같을 때는 꿈이나 목표에 디테일이 떨어지고 액션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럽고 치사한 순간이 잦아지면 우리는 결의를 다지고 꿈을 꾸고 액션을 취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더럽고 치사한 순간순간을 받아치고 꿀꺽 삼켜내며  하루를 버텨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나는 꽃다운 나이가 아니고 나의 선택이 늘 꽃 길만은 아니겠지만 아직은 도전하는 게 맞다. 뜨거운 게 맞다. 그리고 내가 향하는 그 목적지가 거창한 그 어딘가가 아니여도 괜찮다. 그로인해 내가 힘을 낼 수 있고, 잘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위는 내가 몇년 전에 썼던 글인데...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드럽고 치사한"일들이 많이 있나 생각해봤다. 음... 애석하게도 여전하다. 물론 대상과 상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드럽고 치사한 일들 투성이다. ^^; 당신에게도 “드럽고 치사한”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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