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아서

프롤로그

by 게으른 우보만리

쓰지 않으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아서

2018년 가을, 야근하던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쓰던 나는 갑자기 가슴이 조여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 맴돈 건 '오늘까지 이 보고서를 끝내야 하는데....'라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그보다 앞서 몇 차례 경고는 있었다. 자다 깨어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화한 느낌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앉아서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결국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지만, 마지막에 남은 말은 짧았다.
“과로입니다.”


별 이상이 없다는 말에 안도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침 7시 반에 출근해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생활.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언어를 읽지 않았다. 아니, 애써 모른 척했다.


한 공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며, 40대가 되어 처음으로 해외사업 개발을 맡았다.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고, 외국 파트너들과 협상하며 밤을 새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내가 누구보다 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두 건의 사업을 수주한 뒤 동남아의 수도로 파견이 결정되었다. 남편 없이 두 아이와 함께 떠났고, 예전의 경험 덕분에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파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하루아침에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고, 고립은 점점 깊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해외지사 관리자이자 본사와의 연결 창구, 직원들의 상담자가 되어야 했다. 낯선 나라에서 의료 서비스는 열악했고, 주재원으로 지내야 한다는 불안이 매일 짙어졌다. 게다가 함께 파견된 상사는 술에 의존했고, 밤마다 메시지를 퍼부었다. 아침이면 “미안하다”는 사과가 돌아왔지만, 저녁이면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 상황은 점점 더 버거워졌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번아웃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그 무너짐 이후의 기록이다. 화려한 번아웃 극복기는 아니다. 다만 글쓰기와 커피 한 잔, 작은 산책으로 하루를 버텨낸 이야기다. 회복은 완성이 아니라, 일상의 연습이었다. 오늘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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