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감정이 말을 걸던 날들 2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그'는 놀랍게도 내 번아웃의 원인이기도 했다. 그는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작은 의견에도 귀 기울여 주었다. 과분한 칭찬과 격려 덕분에 나는 주말에도, 새벽에도,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힘든 줄 몰랐다.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이 모든 피로를 삼켜버렸다.
나는 본래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고, 과로와 접대 속에서 체중이 10kg이나 늘었을 때조차 그의 칭찬 한마디면 웃을 수 있었다. 그는 한때 상사였지만, 명예퇴직 후 전문직 신분으로 파견되어 같은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사실 좋은 관계는 그때 정리되었어야 했다.
그는 여전히 과거 직책의 대우를 원했다. 그러나 회사 규정상 그럴 수 없었고, 그 답답함은 곧바로 내게 쏟아졌다. 나는 업무 분담을 제안하며 갈등을 줄여보려 했다. 그가 대외 업무를 맡고, 나는 현지 실무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회의자료나 경비 처리까지 도맡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대표’가 아니라는 사실에 불만을 거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조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함이 차올랐다. 그러던 중 전 세계가 팬데믹에 휩싸였다.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동남아의 수도에 파견되어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재택근무를 해야 했지만, 그는 답답하다며 사무실 출근을 고집했다. 저녁이면 회식을 요구했고, 내가 거절하면 혼자 술을 마시고는 밤마다 메시지를 퍼부었다. 아침이면 “미안하다”는 말이 반복됐지만, 저녁이면 같은 일이 이어졌다.
나는 어느새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직위를 잃은 허탈감, 후배와 함께 성과를 내고 싶었던 꿈, 그러나 풀리지 않는 현실…. 하지만 외국인 신분의 나는 현지 지침을 지켜야 했고, 동시에 그를 관리해야 하는 위치였다. 미안했지만,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2020년 봄이었다. 점심시간, 혼자 식사를 하던 중 상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시기 고생 많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이니 가족과 함께 들어오세요.”
따뜻한 목소리였다.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전했을 때 돌아온 건 격려가 아니라 분노였다.
“이렇게 철수하면 사업이 다 무너져! 고령자인 나도 버티는데, 아이들 핑계로 들어가다니….”
그의 외침은 사실 자신의 무너짐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투사’라 부른다.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어기제.
결국 나는 직원 가족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