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감정이 말을 걸던 날들 3
2주의 자가격리 기간은 나에게 일종의 치유 기간이었다. 다이어트도 하고, 금주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격리가 끝나고 본사에서 한 달간 근무하며 흐트러진 업무를 다시 정리했다. 마음도 새롭게 세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면 달라질 거라 믿었다.
정신과에도 다녀왔다. 병원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정말 이런 데까지 와야 하나?’ 하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결국 진료실 문을 열었고, 의사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와의 관계를 끊으세요.”
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물러나 이렇게 조언했다.
“최소한으로만 상대하세요.”
약을 처방받았지만 머리가 멍해지고 집중이 흐려졌다. 며칠 만에 복용을 중단했다. 내 상태는 알약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20년 6월, 나는 다시 동남아의 수도로 돌아갔다. 출국 전 그는 나에게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이미 본부에 보고했으니 돌아오지 마라.”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대신해 “현장은 잘 관리되고 있으니 지사장은 올 필요 없다”라고 보고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본사는 오히려 내 복귀를 격려해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뜻을 거슬러 복귀한 뒤, 우리의 사이는 완전히 냉랭해졌다. 그의 문자 한 줄 한 줄이 내 존재를 지우려 했고, 상사에게 은근히 이간질을 일삼았다.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갈팡질팡했다. 같이 무시할까? 모른 척할까? 그러나 결국 마음은 한 곳으로 향했다. 내가 숙이자. 그래야 내가 편하다.
억울함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같이 근무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제가 서운하게 해 드린 게 있다면 제 잘못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싸움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다. 곧 답장이 왔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네가 다 해라. 나는 늙은 사람으로서 지원하겠다.”
문자를 읽는 순간, 어깨에서 무거운 돌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그날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화해했다. 눈 녹듯 앙금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드디어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이 나라에 미련이 없다며 귀국을 결정했다. 모든 지인을 총동원하여 5번의 거대한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드디어 그는 한국으로 복귀하고 나는 이 나라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현안사항을 점검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8월 말, 현지 파트너사와 긴급 현안을 협의한 뒤 회사 메신저방에 결과보고를 올렸다. 불과 5분 만에 그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네가 뭔데 그런 회의를 하고 이런 자료를 올립니까? 니 일이나 잘하세요.”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품고 있던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지금까지 눌러왔던 무게가 한꺼번에 벗겨지는 듯했다. 나의 잘못과 상관없이 그는 언제나 자기 기분에 맞춰 나를 무시하고 막말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짊어지고 있던 죄책감은 애초에 내 몫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선언했다. “너는 네 스승을 찾았는가? 이제 그를 잃어버릴 때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잃는 법을 몰랐다. 아니, 잃을 용기가 없었다. 이제는 그 시간이었다.
그 뒤로 괴롭힘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회의 중 불쑥 화면에 나타나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고, 그가 느낀 그의 억울한 사연을 장문의 메일에 담아 “이걸 상부에 올리겠다”는 협박을 덧붙였다. 연락은 뜸해졌다가도 잊을 만하면 다시 이어졌다.
나는 매번 흔들렸다. 이미 끝났다고 믿었던 관계였지만, 사실상 끝나지 않은 전쟁이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반복되었고, 마음은 늘 긴장 속에 묶여 있었다.
그해 8월 말, 그 한마디는 내게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1년 넘게 이어진 괴롭힘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그리고 뼈저리게 확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