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 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

2부. 회복을 위한 몸부림 1

by 게으른 우보만리



번아웃의 한가운데서 가장 괴로웠던 건, 예전처럼 보고서가 써지지 않는 일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여러 장씩 쓰던 보고서였다. 예전의 나라면 30분이면 끝낼 일을, 반 페이지도 채우지 못한 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업무 보고는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창작이 하고 싶었다. 쓰고 싶은 건 억울함이었다.
‘왜 나만 참아야 하지?’
‘왜 매번 내가 설명해야 하지?’
‘정말 이게 다 내 탓일까?’

머릿속에서 이런 문장들이 계속 맴돌았다. 결국 보고서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글. 억울함을 풀어내고, 무기력을 기록하고, 감정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글이었다. 쓰다가 울기도 하고, 쓰다가 웃기도 했다.


놀라운 건 내 글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거다. 나조차 몰랐던 내 이야기를 내가 읽으며 위로받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방 대신 새벽 시간이 있었고, 돈 대신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새벽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하루 15분, 졸린 눈을 비비고 앉아 감정을 그대로 쏟아냈다. 누군가는 실직의 아픔을, 누군가는 상실의 슬픔을, 또 누군가는 몸 만드는 일상을 이야기로 썼다. 각자의 글은 서로 다른 사연이었지만,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모두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 후로 나는 글을 온라인 곳곳에 흩뿌렸다.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익명으로, 때로는 실명으로, 감정을 담은 문장을 묻어두었다. 누가 읽어줄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눈에 닿을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가끔 댓글 하나가 달리면, 그 짧은 반응이 며칠 치 위로가 되었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하루 15분씩 감정을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나는 그 효과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억울한 감정을 언어로 꺼내놓는 순간, 다음 날의 숨이 조금 더 쉬워졌다.

글쓰기는 번아웃을 이기는 거창한 해법이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작은 버팀목이었다. 보고서가 아닌 나의 언어로 쓴 문장이,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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