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반복의 힘

2부. 회복을 위한 몸부림 2

by 게으른 우보만리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해준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다. 작은 반복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커피숍에 들렀다. 같은 자리, 같은 메뉴, 같은 순서. 창가 자리에 앉아 도쿄라떼를 시키고, 수첩을 펴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세 칸으로 나눠 적었다. 회사 일, 아이들 일, 집안일.

어떤 날은 칸이 전부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하루를 흘려보내는 날. 예전 같았으면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냥 수첩을 덮고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괜찮았다. 비어 있는 칸이 있더라도,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정리됐다. 따뜻한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머릿속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심리학자 다마지오는 *“몸의 감각이 감정을 만든다”*고 말했다.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그 온기가 가슴까지 퍼져나가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가라앉았다. 몸이 조금 편안해지자 마음도 따라 잦아들었다. 작은 반복의 첫 번째는 그렇게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이었다.


주말이면 손을 움직였다. 화려한 취미는 아니었다. 큐빅을 하나하나 붙이는 보석십자수, 작은 코바늘질, 라탄 바구니 만들기. 완성품은 변변치 않았지만, 손끝이 바쁘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특히 보석십자수를 붙일 때는 머릿속이 텅 비었다. A3 크기의 도안을 펼쳐놓고 큐빅을 한 알씩 집어 붙이는 일.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서 오히려 집중이 잘됐다. 몇 시간이고 몰입하다 보면 억울함도, 분노도, 불안도 잠시 잊혔다. 완성된 그림이 예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그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리처드 세넷은 『장인』에서 *“손의 반복은 인간의 존엄을 지켜준다”*고 했다. 사소한 작업이었지만, 그 사소함이 나를 지켜주었다. 작은 반복의 두 번째는 손끝의 리듬이었다.


저녁이 되면 운동화를 꺼냈다. 핑크색 운동화였다.
처음엔 한 바퀴만 돌았다. 아파트 단지를 도는 데 15분.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웠지만, 다음 날엔 두 바퀴, 그다음엔 세 바퀴가 되었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걸으면 심장은 점점 안정되고, 머릿속은 정리됐다.


걷다 보니 욕심이 생겨 골프채를 잡았다. 예전엔 오른손으로 배웠다가 허리 통증 때문에 포기했는데, 이번엔 왼손으로 새로 시작했다. 처음엔 공이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드라이버로 공이 곧게 뻗어 날아갔을 때, 나는 알았다. 아직 나에게도 시작할 힘이 남아 있구나.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연습장에 서는 일. 실력은 더디게 늘었지만, 꾸준히 내 몸을 그 자리에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성취였다. 작은 반복의 세 번째는 걷기와 운동이었다.


커피 한 잔, 손끝의 리듬, 걷는 발걸음.
사람들은 별것 아닌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반복들이 쌓여 나를 살렸다.

번아웃에서 회복은 화려한 성취나 극적인 반전으로 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찾아왔다.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 건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의식들이었다.

작은 반복의 힘.
그것이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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