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회복을 위한 몸부림 3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서, 나는 무너져 있었다.
재택근무와 고립, 상사의 괴롭힘 속에서 몸은 점점 굳어갔고, 마음은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 시절, 뜻밖의 순간에 나를 붙잡아준 건 책도, 사람도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흘러나온 한 곡의 노래였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내 마음의 뚜껑을 열었다. 처음 임영웅의 〈바램〉을 들은 순간이었다.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마음이 저릿했고, 후렴구가 터지는 순간 눌러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오래 눌러두었던 서러운 마음, 억울함, 잊고 있던 순수한 기억까지 노래 한 곡이 다 꺼내주었다. 나는 노래를 듣다가 거실 한가운데서 엉엉 울었다.
그 후로 한동안은 임영웅의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다. 출근길에도, 산책할 때도, 집안일을 할 때도 그의 목소리에 기대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빠져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그 시기에는 그렇게라도 나를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미스터트롯> 무대도 정주행했다. 예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트로트가 그렇게 마음 깊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금세 알았다. 단순히 음악 취향이 변한 게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내 무너진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임영웅의 노래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었다. 내 감정을 안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통로였다. 글로 다 풀어낼 수 없었던 매듭을, 그의 목소리가 대신 풀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내가 돌아왔구나.
성시경의 발라드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고, 폴킴의 노래에 위로받고, 로이킴의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릴 때, 나는 알았다. 더 이상 임영웅의 노래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나로 돌아왔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노래가 내게 가진 의미가 작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돌이켜보면, 번아웃 한가운데서 임영웅의 노래는 내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생존의 끈이었다. 화려한 치유도, 거창한 변화도 아니었다. 단지 누군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던 날들을 버티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 다시 버틸 힘을 준 사람. 글쓰기가 회복의 첫걸음이었다면, 그의 노래는 회복의 또 다른 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