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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무 Dec 03. 2021

연한 사람, 질긴 식물


 입사 

스테라 화분을 품에  안고 출근했다


설렘  기대 반으로 40분씩이나 일찍 출근했으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을 , 물끄러미 자리를 둘러보모퉁이의 하얀 테이블 눈에 들어왔다. 검은 책상들 사이에서의 그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햇볕이 잘 드는 각도를 찾아 이리저리 살피다가, 식물의 잎사귀가 가장 예쁘게 반짝이는 곳에 화분을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이어 눈을 꼭 감고 손을 꼭 잡고 몇 가지 소원을 작게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회색 도시에서도 푸르고 싱그러움을 잃지 않기를,
지치고 힘들 때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삭한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입사 두 달 차인 지금, '그들이 생각하는 식물'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작은 회사에서 연봉 협상 가능 여부를 여쭤본 것이 화근이었을까, 뇌를 꺼내서 식염수에 씻고 다시 넣고 싶을 정도로 사고 회로가 얼룩지고 있음을 느꼈다. 매일매일 화분에 물을 주기로 다짐했던 나는 매일매일 고통 속에 말라가고 있었다.  


하루는 비가 짓궂게도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있을까?’ 생각하다가, 잊고 지냈던 스테라를 발견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급하게 화분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윤기가 차르르 돌고 구멍이   새잎이 자라나 있는  아닌가.



건강하면 찢어진 잎을 틔우는 몬스테라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새 싹을 틔워낸 게 대견스럽고

그 과정을 봐주지도 않고

무심했던 내 시선이 미안하기도 하고

 같은 마음으로 성장하자며 데려온 아이였는데

호흡을 다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예쁘게 찢긴 잎을 틔우는 너는, 그 자체로 반짝이는구나.





성장 한 모금


얼른 사무실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뜨고 화분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레 흘려보냈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놀라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물을 따라 마셨다

아주,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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