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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l 24. 2024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으며 배운 것

모두가 말렸지만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


“나한테 배워보는 건 어때?"

“다들 말리더라. 심지어 어머님도 말리시고 형님도 말리시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지금 상황에서 강사한테 배우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리고 어차피 배우려면 빨리 배워서 익숙해져야 하고.”

“음, 그렇지.”

“내가 알려줄게. 연수비 아끼고 좋잖아?”

코로나로 뒤늦게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게 되면서 그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둘째 아이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기관에 ‘당첨’되었기 때문이었다. 차는 한 대고, 나는 아직 운전이 서툴렀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출근하는 이른 아침에 아이들과 나갈 수 있게 연습을 해보았는데 그만 아이들 건강에 탈이 났다. 7시 40분까지 문 밖을 나서는 스케줄은 아이들에게 무리였다. 이사를 가거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내가 운전을 해야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정말 고르고 싶지 않았던 '운전하기'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작은 중고차를 한 대 샀고, 운전 연수도 받아야 했다.



“그래? 그럼 그래 볼까? 그런데… 가운데 밟는 게 브레이크인가? 아니다, 액셀이던가?”

“뭐?”

남편은 황당한 질문 하나로 현재 나의 수준이 ‘운전’의 ‘ㅇ’도 모를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그랬다. 오죽하면 운전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날부터 악몽에 시달렸을까.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려서 멈춰야 하는데 못 멈추고 자꾸만 여기저기 차를 들이받는 꿈을 꾸고 나면 눈을 뜨면서 벌렁대는 심장에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런 내가 운전이라니! 그것도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는 상황이라니!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부부의 도전이었다. 그렇게 열 명 중 아홉 명이 말린다는 ‘남편에게 운전 연수 받기’가 시작됐다.




“자, 시동을 걸 때는 가운데 페달을 밟고 차 키를 돌려야 해. 가운데 페달이 브레이크야.”

“응, 알겠어.”

첫 질문 덕분에 남편은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운전자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었다. 남편은 운전을 잘하는 편이다. 좌회전이나 우회전 시 차선을 잘 지키고 속도를 낮추는 것, 차선의 가운데를 잘 지키는 것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덕분에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알게 모르게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고 연수하는 내내 내가 운전을 하는지, 남편이 운전을 하는지 살짝 헷갈릴 정도로 남편으로 빙의되어 운전을 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면 뒤차가 답답해해.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은데? 차 간격이 너무 넓잖아.”

“차 간격이 넓으면 안 돼?”

“그럼 다른 차들이 사이에 끼어들잖아.”

“다른 차가 끼어들면 안 돼?”

“그럼 가야 하는 곳에 늦게 가잖아.”

“조금 늦는 것보다 안전하게 가는 게 더 낫지 않아? 약속 시간에 넉넉하게 나오면 되지. 맨 처음 운전 배울 때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 처음 운전할 때 너무 속도 내지 말라고. 답답하면 다른 차들이 알아서 비켜간대. 그 대신 초보운전 크게 써서 붙이고!”

“그래. 그럼 편한 대로 해.”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만 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면 일찌감치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고 속도가 줄어갈 즈음 서서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차 한 대 정도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하게 거리를 두고 정지했다. 운전 연수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내 차를 보며 문득 예전에 했던 심리테스트가 생각났다.








“나현아, 만약에 사막을 건너는데 원숭이, 새, 뱀 세 동물을 모두 데리고 가야 된다면 어떻게 갈 것 같아?”

“음… 나는 우선 원숭이를 업고, 새는 날개가 있으니까 알아서 날아오게 하고 뱀도 그냥 알아서 따라오게 할 거야. 사막이니까 스르륵 잘 올 거 같은데, 왜?”

“푸하하, 진짜?”

평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간단한 심리테스트였다. 여기서 원숭이는 미래의 배우자, 새는 미래의 자녀, 뱀은 돈을 뜻한다고 했다.(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궁금하네요!) 각각의 동물을 어떻게 데리고 가는지가 가족과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새는 날 수 있으니 제 날개를 마음껏 펼쳐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내 시야에 두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정도만 알려준다면 그걸로 내가 할 일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질문을 듣고 원숭이를 떠올렸을 때는 아주 작고 귀여운 아기 원숭이를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업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원숭이는 생각보다 아주 크고 무거운 원숭이였다. 내가 업고 갈 존재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갈 존재였다. 더운 사막에서 꼭 붙어 있으면 너무 더우니까 어느 정도 떨어져서 걷는게

좋겠다. 내 어깨에서 쉬고 있는 두 마리의 새 중 한 마리도 어깨에 올려주면서.






“어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옆에 거의 박을 뻔했어.”

“아고, 미안해, 미안해요!”

“왜? 왜 그런 거야?”

“글쎄……. 잘 모르겠어. 옆에 차가 오나 안 오나 보다가 핸들이 거기로 같이 움직였나 봐.”

“아, 나는 핸들 똑바로 잡았는데 옆으로 가나 했지. 시선만 움직이고 핸들은 움직이면 안 돼.”

“응, 알겠어. 미안해. 그래도 나 잘했지? 처음치고 잘하지 않았어?”

“으, 으응 잘했어……. 그런데… 있잖아, 집에 갈 때는 내가 운전하면 안 될까?”

아!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짠하다. 초보 운전자의 조수석에 앉아서 느끼는 생명의 위협이 온몸을 옥죄었을 것이다. 도착지에 차를 무사히 주차하기까지 마음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요! 고마워. 자기가 운전을 잘해서 덕분에 잘 배우네. 다음 고속도로 연수도 잘 부탁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을 일이 있었을까?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나중에 다른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운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취향이 있어서 부부라도 서로의 운전 실력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을 조금 하고 나서는 알려주는 남편에게 대드는 수강생이 되기도 했다.



“여기서 이렇게 기다릴 게 아니라, 왼쪽 차선으로 우선 들어가서 깜빡이 켜고 더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면 돼.”

“나는 아직 초보라서, 차가 많이 달릴 때는 끼어들기가 무서워. 그래도 조금 기다리면 안전하게 끼어들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기다리다 갈게요.”

강사에게 대들 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모두가 말렸지만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만큼은 부부가 아니라 운전을 처음 배우는 학생과 운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안전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하면서,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의 사회적 위치가 바뀌면서 안전거리는 짧아졌다가 길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어느때는 내가 한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또 어느때는 남편이 한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릴때면 다시금 '적당한 거리'를 인식하는 대화의 시간을 보낸다. 부부사이의 안전거리는 어느정도가 적당할까? 여전히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상대방이 원하는 거리감을 익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은 가끔 "아침에 일어났는데, 문득 깜짝 놀랄때가 있어. 내가 결혼을했고, 애가 둘이나 있네! 하고 말이야!" 라고 말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결혼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때가 있는 우리다. 그만큼 알아갈 서로의 모습이 많다는 뜻이겠지? 그만큼 양파같은 매력을 가진 부부라는 뜻이겠지? (하하하하하하 ^^;;;;) 앞으로 살아가면서 서로가 얼마나 새로울까 (세상에!) 우리의 그 모든 모습들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 아래 썼던 글 한 편이 출간 도서의 한 꼭지가 되었습니다 )))

https://brunch.co.kr/@nahyeon096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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