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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l 17. 2024

꿈꾸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

과정은 소중하고, 결과는 중요하다

‘고객님의 소중한 물품이 18시~20시 배송 예정입니다.’



택배를 시킨 적이 없기에 잘못 온 문자라고 생각했다. 그냥 넘기려는데 배송 물품이 무엇인지 가만히 살펴보니 ‘길상 안채’라고 적혀 있었다. 


“와! 엄마! 나 지난번에 동양화 물감 체험단 신청한 거 당첨됐다고 연락 왔어요!”

“진짜? 어디 봐봐. 어머, 진짜네? 안 됐다고 하더니?”

“어제가 발표일이었는데 따로 문자가 안 와서 안 된 줄 알았지. 그냥 바로 배송해주는 건가 봐. 이게 다 엄마 덕분이야. 고마워요!”




체험단에 당첨된 건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드리려고 화구를 파는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체험단 광고를 보고 신청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무슨 체험단 선정이 되겠어?’

신청서 적는 난을 보니 후기를 올릴 SNS 주소를 적는 칸이 있었다. 아무래도 SNS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체험단에 뽑힐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나는 SNS를 꾸준히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신청해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한번 신청이라도 해볼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 뭐.’ 될 가능성은 낮아 보였지만 안 되면 말지 하는 생각으로 신청을 하고 부리나케 블로그에 그동안 그렸던 작품과 홈클래스 했던 모습을 올렸다. ‘되겠어?’라는 마음과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그리고 체험단 발표일, 아무런 연락도 없기에 ‘역시, 안 됐네’ 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배송 문자가 온 것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택배를 풀고 물건을 확인하는데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체험단이 되면 배송된 물감을 활용해서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해야 했다. 주어진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작품을 제출하기까지 2주 정도 시간이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작품을 완성하고 뒷부분에 두꺼운 종이를 덧붙이는 배접 작업까지 하려면 일주일 내에는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엄마, 엄마도 같이 해볼까? 어차피 종이도 충분하고 물감도 있는데 같이 그려보자. 엄마는 수채화 그린 경험이 있어서 내가 조금만 알려주면 금방 그릴 거야.”

“공모전은 무슨 공모전이야. 어차피 작품 내도 당선되는 사람들은 다 따로 있어.”

“그래도, 입선이라도 하면 좋잖아. 당선자 수가 많아서 입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니까?”

딸의 제안에 엄마는 못 이기는 듯 같이 공모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그림을 그리지?”

“나는 처음 민화 배우기 시작할 때 그렸던 모란도 그려보려고요. 엄마는 어떤 그림 그릴지 같이 찾아보자.”

“엄마는 연꽃 한번 그려볼까? 그런데 이 색은 마음에 안 드는데 꼭 이렇게 칠해야 돼?”

“색은 엄마가 하고 싶은 색으로 하면 되니까, 우선 연화도로 결정!”


그렇게 딸과 엄마의 공모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직을 준비 중이던 여동생 덕을 톡톡히 봤다. 여동생이 연우와 은수를 돌봐주는 동안 엄마와 나는 그림을 그렸다. 엄마는 수채화를 오래 그리신 터라 민화의 기법을 조금만 알려드려도 금방 터득하셨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 모여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도 공모전 기간 내에 작품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친정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으로 퇴근을 하셨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치킨을 먹는 사이 엄마랑 나는 즐겁게 작품을 그렸다. 겨우 예정일에 맞추어 작품을 완성하고 배접 처리를 한 작품을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공들여 작품 설명을 써서 접수증을 붙였다. 





모(母)란도: 길상 동양화 공모전을 계기로 출산 이후 4년 만에 다시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 마음으로 돌아가 떠올린 작품이 ‘모란도’였고,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진 손길로 이번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육아와 살림에 지친 친정 엄마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좋은 추억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 두 번째로 그린 모란도는 ‘모(母)란도’가 되었습니다.




나와 엄마의 작품을 우편으로 보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와 추억을 쌓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과 입선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엇갈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상자 발표 날이 되었다. 어찌나 하루가 늦게 흘러가던지. 저녁 6시가 넘어가도록 소식이 없어 급기야 참지 못하고 공모전 주최 측에 전화해 오늘 발표가 나는지 물으며 온갖 소란을 떨었다. 



 “엄마! 결과 발표 났다!”

 “어떻게 됐어?”

 “대박! 나 대상 받았어! 엄마도 우수입선이야! 우와, 우리 진짜 대박이다!”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만으로도 참 감사했는데 생각하지 못한 큰 상까지 받게 되어 가슴이 벅찼다. ‘대상’ 수상자 자격으로 전시회에 참가하여 상을 받고, 생애 처음으로 흰 장갑을 끼고 묵직한 금색 가위로 리본을 잘랐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아직도 얼떨떨하다. 대상을 받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별로 다르지 않은

일상이 이어졌다. 여전히 홈클래스를 열고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민화를 그리는 일을 계속했다. 생각해보면 민화 수업을 한 덕분에 체험단에 신청할 기회가 생겼을 때 조금 더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었다. 이미 자격을 갖춘 듯, 이룬 듯한 마음가짐으로 수업을 했던 지난날이 진짜 자격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첫 번째 도전부터 이렇게 큰 상을 받으니 어떤 공모전이든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고, 매의 눈으로 새롭게 도전할 공모전을 찾다가 엄마와 함께 ‘안견사랑전국미술대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로 신청할 수 있어서 나는 민화로, 엄마는 수채화로 도전했다. 모녀가 같이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가 바뀌었다. 아이들과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를 보내던 모녀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아이디어를 나누고 작품을 구상하는 대화를 하게 됐고, 새로운 도전으로 대화가 바뀌자 평범한 일상이 조금 더 특별해졌다. 


새롭게 도전하는 공모전에서는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모티브 삼아 창작 민화를 그렸다. 자신감에 가득 차서 그린 새 작품은 내가 그린 그림이 맞는지 믿기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지난 공모전보다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 더욱 열심히 준비했고 후회 없이 작품을 완성했다. 지난번에 대상을 수상했으니 이번에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작품을 접수했다.

공모전 결과 발표 날, 집 근처 마트를 가던 길에 결과 발표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새로운 공지 글이 떠 있었다.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내 휴대폰으로는 첨부된 파일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마트에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했다. 간식을 찾는 아이들을 간신히 꼬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이번에는 어떤 상을 받았을까? 심사위원들이 내 작품을 보고 아주 깜짝 놀랐을 텐데!’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켜며 첨부파일을 열었는데 어디에서도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의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에 나가자고 성화인 아이들을 앞에 두고 더 볼 것도 없는 딱 한 장짜리 문서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말에 상관없이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만을 비교하면서 성장해나가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고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인정에 목말라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나는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으로부터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이었다. 아등바등 기를 쓰고 아이들을 잘 키우려 했던 것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엄마’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디 나가서 “애들이 참 똑똑하고 예의 바르네요!”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깨에 뽕 넣은 듯 하루 종일 기분 좋았던 건 사실이니까. 

그만큼 새로운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기대도 컸고 실망도 컸다. 잔뜩 부풀었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자존감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김칫국을 가득 마신 탓인지 그날은 하루 종일 배도 고프지 않았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영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컴퓨터를 켰다. 첫 번째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체험단 후기로 블로그에 글을 썼고, 두 번째 공모전을 준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적은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공모전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실패였다.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림을 그리며 남겨둔 기록을 보니, 상을 받지 못했다고 그림을 그렸던 과정이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차곡차곡 남겨둔 기록이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토닥여주고 있었다. 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작품을 그리며 쌓은 실력까지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꿈꾸던 일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은 바로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할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나의 도전이 실패로 끝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나중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나는 꿈꾸는 일을 실천으로 옮겼고, 비록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 대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경험들을 얻었으니 무엇이든 해볼 일이었다. 마음만 먹어서는 꿈꾸는 일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 움직이고 부딪혀봐야 그 과정에서 꿈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다.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은 게임이다.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도전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해 마음이 헛헛할 때면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상’이라는 것을 좀 받아보고 싶어 시작한 일에서 더 중요한 것,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방법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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