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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l 03. 2024

엄마의 화를 먼저 다르려 보기로 했다

왜 그리도 화를 냈을까

‘애들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한참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쎄한 기분이 들었다. 아옹다옹 다투는 소리가 들릴 법한데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한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럼 그렇지’ 하며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이게 뭐야!”

“엄마, 잘못했어요.”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로션을 이렇게 많이 짜라고 그랬어! 이렇게 잔뜩 짜서 몸이고 바닥이고 발라두면 어떻게 해! 이거 연우 피부 때문에 산 비싼 로션이란 말이야!”

“엄마, 잘못했어요.”

“닦아! 네가 다 닦아!”


불같이 화를 냈다. 첫째는 연신 잘못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나는 그 아이의 손에 휴지를 던지면서 닦으라는 말만 계속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는 폭포같이 아이에게 쏟아졌다. 둘째를 씻기고 나오자 휴지로 깨지락거리며 몇 번 바닥을 문지른 연우는 엉엉 울며 다 닦았다고 말했다.


“아직 많이 남았잖아!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할 거야? 도대체 왜 이렇게 가만히 있지를 않는 거야! 엄마가 주방이고 거실이고 정리하느라 바쁜 거 안 보여?”


이렇게 아이에게 쏟아내고 나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정이 더 격해졌다. 화를 내면 낼수록 아이가 더 미워지고 아이에게 화내는 내 모습이 죄스러워서 또 화가 났다. 격하게 화를 내고 나서도 온몸을 뜨겁게 달군 그 감정이 쉽사리 식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참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화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 화가 가라앉고 나니, 로션이 따갑다며 바르기 싫어했던 연우가 스스로 로션을 온몸에 바르며 장난을 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도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첫째와 즐겁게 로션을 바르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기회를 ‘화’로 날려버리고 만 것이다. 아이에게 화내고, 화를 낸 내 모습을 반성하고.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웠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냈을까. 


어질러진 주방과 거실을 정리하면서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이제 좀 쉬고 싶은 타이밍이었는데 또 치워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니 화가 난 것이었다. ‘도대체 엄마는 언제 쉬란 말이야! 너희는 왜 그렇게 하루 종일 집을 어지르는 거야! 그냥 치우면 치운 대로 가만히 좀 놔둘 수 없어?’ 이런 속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지금 내가 처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더 깊이 원인을 파고들자면, 몸에 남아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체력이 바닥인 날은 영락없이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아이들을 재우다 초저녁부터 까무룩 잠이 들어서는 새벽 1, 2시에 애매하게 눈이 번쩍 뜨이는 날이면 머리맡에 놔두었던 휴대폰을 들고 내려놓지를 못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흘러 얼굴 위로 철퍼덕 떨어지는 휴대폰에 맞고 나서야 내가 깜빡 졸았다는 것을 알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그렇게 새벽에 잠을 설쳤으니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 잘 자고, 마음에 여유를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엄마의 삶에는 여유가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많았다. 아무리 숙면을 취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자다가 깨서 물을 찾거나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잠들고 나서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럴 때면 화를 내고 싶지 않아도 어떻게 화를 안 내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를 몰랐다.



매번 화가 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말고,
미리 몇 가지 방법을 정해두면 어떨까?



문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대처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지를 만들었다. 시험 문제를 풀 때도 주관식은 어렵지만 객관식은 풀 만하다. 정말 답을 모르겠으면 다섯 가지 중에서 뭐라도 찍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읽었던 ‘엄마의 화’에 대한 책 내용을 살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 ‘엄마는’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 화나는 감정에 가려진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찾아보기
― 꼭 안아주고 뽀뽀하기
― 아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짜증을 막아주는 방패와 내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이에게 전달하는 상상하기



종이에 크게 적어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화가 날 때면 우선 떠오르는 것을 골라 실행했다.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 딸기! 딸기! 딸기 먹고 싶어요!”

“연우가 딸기가 먹고 싶구나. 혹시 딸기 말고 사과는 어때? 사과는 있는데.”

“딸기가 좋단 말이야!”

“엄마도 연우한테 딸기를 주고 싶은데 지금은 딸기가 없어.”

“그럼 사가지고 오면 되잖아.”

“엄마도 사오고 싶은데 밖에 뭐가 오고 있지?”

“비.”

“맞아. 비가 와서 엄마가 우산을 쓰고 은수랑 연우랑 같이 딸기를 사러 가기가 어려워. 그러니까 우리 아빠 오시는 길에 딸기 사달라고 부탁하고 잠깐만 기다리면 어때?”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두드려 남편에게 오는 길에 딸기를 꼭! 제발! 잊지 말고! 사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기다리자”라고 말을 끝내면 아이가 짜증을 낼 것이 훤해서 전략적으로 “어때?”라고 물어봤다. “응 알겠어요”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이는 내 뜻대로 답하지 않았다.


“지금 딸기 먹고 싶단 말이에요. 빨리 딸기 줘요.”

선택지에 적힌 방법들을 써봐도 도무지 아이의 억지는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만 더 있으면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방법을 찾자. 방법을 찾자.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으아, 아무 생각이 안 나! 방법이 없어!’ 생각하는 사이 아이는 더 심하게 짜증을 냈고 나의 영혼은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우우우~ 원 웨이 티켓 투 더 문

탈출한 영혼이 음악을 안고 돌아왔다. ‘에라 모르겠다. 춤이나 추자!’ 머리를 열심히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신나게! 흥겹게! 음악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연우가 짜증을 멈췄다. 그리고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라디오 디제이님 감사합니다. 라디오 피디님 고맙습니다’ 라디오에 대고 절이라도 할 판이었다. 열정적으로 춤을 춘 우리는 노래가 끝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 노래 끝났네.”

“괜찮아, 조금 있으면 또 나와.”

휴대폰으로 노래를 찾아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순간에 휴대폰으로 노래를 찾느라 흥에 겨워 행복한 아이의 얼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노래가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즐겁게 춤을 췄다. 다음 곡을 기다리는 시간은 이어서 나올 노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느린 음악이 나오면 손을 잡고 왈츠를 추듯 춤을 췄다. 아이 발을 내 발 위에 올려놓고 그렇게 춤을 추는 사이 다행히 남편이 왔다.


“아빠다!”

“아빠도 같이 춤추자고 할까?”

“아니, 빨리 딸기 먹을 거야.”

연우는 집요했다. 역시 내 아들이다 싶었다. 잊지 않고 딸기를 찾았다. 다행히 남편은 딸기를 사왔다. 아빠보다 딸기를 먼저 찾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니 깔깔깔 웃었다. 딸기를 먹고 나서도 온 가족이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췄다. 이날 이후 그 어떤 선택지도 통하지 않는 날,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고 짜증과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면 ‘원 웨이 티켓’부터 아는 노래를 총동원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아무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가장 좋은 선택 지는 유머였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욕구를 파악하고 화나는 마음에 가려진 나의 바람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울 때도 ‘유머’만큼은 언제든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원 웨이 티켓’부터 시작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었다. 엄마가 화를 내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아이에게 ‘내 말을 좀 들어먹어라!’라는 압박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위바위보’에서처럼 아이의 엉뚱한 고집 앞에서는 ‘주먹’보다 ‘보자기’가 더 힘이 셌다. 나도 즐거웠고 아이도 즐거웠다. 더 이상 울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추면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도 저도 안 될 때는 ‘원 웨이 티켓 투 더 문’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자고 다짐했다. 


신나게 춤을 추다 보면 화를 내려던 순간은 어디 가고
마음만은 벌써 달에 가 있게 되니까.


(((❣)))

20년 4월 14일에 브런치에 쓴 글이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자존감 수업'의 한 꼭지가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nahyeon09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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