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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n 26. 2024

엄마가 되고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매일 다짐만 하는 날들

“이거 봐. 밥 남겼잖아. 아까 과자 다 먹고 밥 먹는다고 하더니!”

“배불러. 그만 먹을래.”

“이렇게 많이 남기면 어떻게 해! 아깝게! 다음에는 밥 먹기 전에 과 자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줄 거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걸 또 먹고 있어. 어휴, 자꾸 살쪄서 이제 그만 먹어야 되는데’

하면서도 남긴 밥이 아까워서 입 안으로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싱크대 에 서서 입안에 꽉 찬 밥을 씹으며 그릇을 하나씩 닦다가 문득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 내 밥은 뜨지 마.”

“왜?”

“애들이 남기면 그냥 그거 먹게. 아깝잖아.”

“왜 애들이 남긴 걸 먹어? 그냥 새 밥 먹어.”

“내 밥 먹고 애들 남긴 것도 아까워서 먹다 보니 살이 엄청 쪘어.”

“자꾸 살찐다고 걱정하지 말고, 애들이 남긴 거 먹지 마.”

자연스레 남은 음식을 입안에 가득 넣으며 ‘또 살찌겠네!’ 하고 걱정 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사실 밥 먹을 때 아무리 떼를 써도 과자 먼저 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다짐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다음번에는 절대 과자 먼저 안 줄 거야!”라는 지킬 수 없 는 말을 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떼를 쓸 때마다 나는 아 이에게 졌고 과자를 줬다.


애들이 남긴 거 먹지 마.


밥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며 엄마 말을 떠올렸다. 엄마는 엄격한 분이셨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서 부업 을 하며 한푼 두푼 살뜰하게 돈을 벌고 집안일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해내셨던 엄마. 그런 환경에서 삼 남매를 키웠던 엄마는 자연스럽게 억척스러워졌고 엄해졌고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으리라. 그렇 지 않으면 당신이 그 삶을 버텨낼 수 없었을 거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다.’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울컥, 눈앞이 흐려졌다. 싱크대 물을 조금 더 세게 틀었다. 설거지 소리에 흐느끼는 소리가 묻히도록 일부러 그릇을 더 요란스럽게 닦았다. 라디오에서는 슬픈 발라드까지 흘러나왔다. 눈물이 한두 방울로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이 그 릇을 닦는 건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그릇을 닦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푸어푸’ 설거지를 하다 말고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그냥 눈물 이 났다는 사실을 닦아내고 싶었다. 힘들지 않고 싶었다. 그릇도 닦아 내고 얼굴도 닦아냈다.




“엄마! 나 과일 먹을래.”

“아까 밥도 절반이나 남겨놓고는! 안 돼. 밥 다 안 먹으면 과일도 못먹어.”

“그래도 과일 먹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밥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그랬지? 밥 남겨놓고 는 뭘 또 먹겠다고 그래? 안 돼!”

전날 저녁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일은 짜증 내지 말아 야지.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잘 다독이면서 말해줘야지’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에게 또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하지 말라는 행동 만 골라서 하는지, 아이가 얄미웠다. 분명 내 유전자도 어느 정도 가지 고 태어났을 텐데 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은 진짜 짜증 내지 말아야지,
화 안 내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 게 잘 타일러서 얘기할 거야.

아이를 재울 때가 되면 매번 새롭게 다짐을 했다. 다음 날이 되면 그 다짐은 어디 가고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아이는 매번 자 신의 본능에 충실했고 나는 아이의 본능이 꼭 나의 본능인 것처럼 최선 을 다해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그러다 저녁 즈음 되면 ‘이 정도 했으 면 됐지, 얼마나 더 해야 되냐!’라는 마음으로 짜증을 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원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그렇게 화를 내면 화를 내는 내가 또 미웠다. '좋은 엄마는 아닌가봐'하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매일 다짐만 하는 것도 지쳐갈 즈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하 는 의미 없는 후회를 그만두고 싶었다. 이제 다짐만 하는 게 아니라 상 황을 좀 바꾸고 싶었다.



먼저 아이와 나를 연결하고 있는 마음의 탯줄을 잘라내야 했다. 

열 달 동안 한 몸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던 시간을 보내고 탯줄을 자르며 아이와 분리가 되었지만 ‘너와 내가 하나’였던 감정은 싹둑 잘라내지 못했다. 잘라내지 못한 마음의 탯줄이 아이와 나의 욕구를 분리하지 못하고 같 은 것인 양 느끼게 했다. 그렇게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나하나 맞춰주다 하루를 하얗게 불태우는 날이 이어졌다. 이런 날들을 더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작은, 아이와 아직 끊어내지 못핸 마음의 탯줄을 자르는 일 이었다. 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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