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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Sep 03. 2023

보고서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전 만능 로봇이 아닙니다만


"소설을 쓴다면 자소서나 보고서는 잘 쓰겠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하나의 기술로 퉁쳐서 생각하는 듯싶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은 자소서도 잘 쓰고, 공문서도 잘 쓰고, 시도 잘 쓰고, 심지어 작사까지도 할 줄 알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근데 글쓰기의 영역은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다. 웹소설을 쓴다고 해서 다른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수필이나 에세이도 전혀 다른 영역이기에 선뜻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
시와 작사는 웹소설보다 훨씬 강한 감정선을 요구하며, 반대로 자소서와 보고서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을 써야 하는 글은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교에서 조교를 했다. 그때도 웹소설을 쓰고 있었고, 동료들도 내가 웹소설 쓰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보고서를 쓰려고 할 때마다 렉이 걸려버린 로봇이 된 기분이 들었다. 기본 30분은 한글 창을 켜 놓고 멍 때리고 있으면, 지나가던 동료들이 뭘 그렇게 고심하냐고 한소리씩 했다. 웹소설도 쓰는데 그거 쓰는 게 뭐 그렇게 어렵냐고 말이다. 그냥 과거에 쓴 것을 참고해서 대충 내용만 바꾸라고 조언까지 들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나는 조교 업무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보고서 쓰는 걸 어려워했다. 다행히도(?) 그 후에 보고서를 쓸 일을 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 렉 걸린 로봇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보고서 양식의 글을 볼 때면 이상하게 움직임이 멈춘다. 나는 아마도 천상 공무원은 못할 체질이긴 한 듯 싶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에게 다른 종류의 글쓰기 업무가 껌일 거라고 쉽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되는 글 쓰기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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