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덕후의 덕업일치
동로판 작가가 될 수 있던 배경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역사'였다.
초중고 내내 역사 수업만은 손꼽아 기다렸고, 역사 수업 때는 누구보다 가장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역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사학과를 가고 싶었고, 역사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사학과를 가지도 못했고, 역사 선생님이 되지도 못했다. 그래도 역사와 관련된 학과를 선택했고,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해서 석사학위까지 땄을 정도로 역사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생각해 보면 역사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역사 속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살았을 환경, 의복, 유행, 그런 걸 학창 시절에 많이 상상했고, 교과서 빈자리에는 한복(주로 당의나 용포)을 많이 그렸다. 그러면서 나 혼자 공상에 많이 빠졌던 것 같다.
어린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 그때의 내가 자라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공상에 빠져 살고 있다. 머릿 속에서는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역사 속 어떤 순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국사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과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넓어진 세계관은 동양풍 로맨스 판타지를 쓰는 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꾸역꾸역 영감을 뽑아내고, 캐릭터를 만들고, 세계관을 구축하지는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도 저절로 떠오른다. 다만, 그게 내가 흥미가 있는 동양의 역사를 베이스로 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서양 로판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다. 솔직히 서로판도 쓰고 싶었다. 근데,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도무지 그 세계관, 캐릭터 이름이 동로판을 쓸 때처럼 술술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로판을 쓴 이력이 없다.
로판이든, 현판이든, 무협이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저절로 영감이 흘러나온다. 캐릭터든, 세계관이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분야를 많이 접해서 지식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지식이 영감의 기반이 된다.
역사덕후로 말하자면, 나는 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게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아닌, 정신적인 즐거움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덕업일치로는 최고의 삶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