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현 Oct 15. 2023

상상이 눈앞에서 펼쳐질 때

야밤의 니조성

작가라면,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볼 수 있을 때, 가장 흥분되고 짜릿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잘 나가는 웹소설 작가들 작품처럼 내 작품도 웹툰이나 드라마화되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내게는 상상을 실제로 볼 수 있는 행운은 오지 않았다.

대신, 내가 쓴 소설의 배경을, 종종 말도 안 되게 현실에서 마주할 때가 있다.

2016년, 일본 교토에 갔을 때, 니조성을 가게 되었다. 관람 시간은 오후 6시까지로, 밤의 니조성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한테 필요한 배경은 한 밤 중의 니조성이었다.

어쩌겠는가. 그냥 상상하면서 쓸 수밖에.

그런데 그로부터 3년 후, 국제박물관협회(ICOM)에서 4년마다 열리는 국제행사가 교토에서 하게 되었다. 2019년. 다시 교토를 찾았는데, 행사 참여자 프로그램 중에 니조성 야간 투어가 있었다.

저녁 7시부터 밤 9시까지 니조성을 개방했는데, 사람이 너무 몰려서 나는 주변을 떠돌다가 밤 8시 30분쯤 들어갔다. 늦은 시간에 입장한 덕분에 사람이 없는 그곳의 분위기를 톡톡히 즐겼다.

바닥에 놓인 등불에 비친 성 내의 복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벽화들, 낮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밤이 주는 매혹적인 아름다움, 무엇보다 내가 쓴 소설 속 장면이었던, 쇼군의 방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에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내 상상 속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분이란 너무나도 짜릿하고 소름이 돋았다.
나 혼자서 '저기는 남주가 등장하는데!' '저기서는 쇼군이 있는데!' 이러면서 둘러보는데 마치 내가 소설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맛에 이야기를 쓰는구나.

웹소설을 쓰면서 기쁜 순간은 종종 있었지만, 이토록 강렬한 희열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내 상상이 눈앞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건 정말이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경험이었다.


이전 24화 검도 동아리의 여자 회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