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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표암 이야기를 쓰면서 올해 향사를 가보겠다, 했었는데 지난 4월 23일 표암재에서 춘향대제가 열렸다.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 제례가 진행되는데 봄 향사를 더 크게 지낸다.
평소에는 표암재 출입이 제한되지만 향사가 열리는 이 날은 내부가 개방되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전통방식으로 제례를 지내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
상상이지만 격세지감을 느낀다. 유교 전통윤리가 중요했던 시절엔 아마 춘향대제 전후로 표암재는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여느 제사가 그렇듯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정겨운 풍경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평일, 그것도 오전시간에 진행된 춘향대제에 나와 같은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참석하셨다. 경주에 계신 분들뿐만 아니라 서울, 광주, 대전,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 있는 경주이 씨, 그리고 경주이 씨에서 분파된 이 씨 문중의 대표 분들이 참석하셨다.
경주이 씨의 연원은 신라 건국까지 올라간다. 신라의 첫 번째 왕은 박혁거세지만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서라벌 오늘의 경주 지역에 기반을 마련하고 있던 여섯 촌장들과의 협력 덕분이었는데 그 여섯 촌장 중 한 명이 바로 경주 이 씨의 시조인 알평이다. 그래서 이 씨 성을 하사 받거나 스스로 가문을 열었거나, 중국 등 타지에서 들어오지 않은 한반도 내에서 이 씨 성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바로 이알평, 그래서 경주이 씨는 한국 토종 이 씨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10시 50분. 향사가 시작되었고 제를 올릴 때 술잔을 올리는 순서로 초헌관과 아헌관, 종헌관을 맡은 분들이 차례대로 입장,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날은 표암재는 물론 표암 언덕에 있는 비각과 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 목욕한 장소로 전해지는 신성한 곳도 개방된다.
나는 경주 이 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김 씨다.
그럼에도 부러 시간을 내어 제에 참석하고 기록을 하는 건
어쩌면 이 춘향대제도 시간이 흐르면서 간소화되고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야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면서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행사였지만 지금은 명맥을 이어가는 데도 버거워 보여서 많이 안타까웠다. 가능하다면 학생들에게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참석한 일반인들에게도 중간중간 제례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한 가문만의 행사가 아니라 옛 전통을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화유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