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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조향사

by 에티텔
1.만약에우리가-edit-fb.jpg 이효연, 만약에 우리가, 아사에 돌가루와 유채, 112x290cm, 2022

언제부터인가 나는 색을 선택하는 일에 좀 더 마음을 고르며 나만의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기도 한데 비슷비슷한 색들로 이루어진 숲에서는 조금씩 서로 다르고 상당히 비슷한 점도 많다. 조금 다른데 그 녀석이 자리를 옮기면 새로운 자리의 옆 색깔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아서 자연스레 나는 색을 여러 곳에 배치시켜 본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나는 대체로 원색을 쓰는데 시간이 흘러 주변과 조화를 찾아가는 동안에 그림 속의 색은 비로소 차분해진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즐겨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한 번의 직관으로 결정되어 여러 번 색을 덧바르는 수고를 덜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나는 아직 계단에서 두 칸씩 걸음을 떼지 못한다. 영영 어려울 지도 모른다. 계단은 한 칸과 한 칸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그것이 계단의 본분인 걸 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관계에 전보다 더 천착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색이라는 추상적 요소가 구체성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적확함을 추구하면서 시작된다. 나는 분명 구체적 형상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데 그 대상 하나하나를 보면 비슷한 무리의 색 덩어리들이 서로의 다름으로 주위와 구별되어 거리를 두어 하나의 풍경이 되곤 한다. 녹색을 예로 들면 나의 팔레트가 제공하는 녹색은 스무 가지는 넘을 텐데 그것들을 서로 섞음으로써 나의 녹색은 백가지를 훌쩍 넘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White Composition-edit-web.jpg 이효연, 화이트콤포지션, 아사에 돌가루와 유채 45.5x45.5cm, 2022


내가 처음 강아지를 보았을 때 치와와면 모두 한 얼굴을 가진 줄 알았고 푸들이면 역시 한 얼굴을 가진 여러 마리의 생명으로만 이해했었다. 강아지의 얼굴뿐 아니라 원산지가 서로 다른 원두커피의 향과 맛, 원산지가 다른 치즈의 맛, 와인의 맛을 조금씩 더 다양하게 즐기면서 구별하는 것과 닮았다. 결국 내가 차이를 더 많이 구별할수록 나의 감각기관이 느끼는 세상은 더욱 섬세해지고 그것을 향유하는 내게는 풍요로운 맛과 향과 수많은 섬세한 세계의 문이 열린다.

6.숲의 믿음-web.jpg 이효연, 숲의 믿음 6, 아사에 돌가루와 유채, 116.7x91cm, 2022

나는 가끔 내가 중세시대나 더 먼 옛날에 태어났다면 조향사나 연금술사처럼 화학반응을 실험하고 차이를 기록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실험실 인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만큼 색이 갖는 고유의 속성과 온도는 옆 색깔과의 관계에 의해 스스로의 매력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용어 중에 색온도라는 것이 있다. 색에 온도가? 하기 쉽지만 참 딱 맞는 옷 같은 조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색의 온도는 물론 질감과 무게 같은 의미들이 끼어든다. 결국 내가 바라보는 곳은 내 마음속의 풍경을 물질세계로 꺼내어 표현함으로써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있다.

가지않은 길-web.jpg 이효연, 가지 않은 길, 아사에 유채, 60.6x72.7cm, 2022

나는 꽤나 복잡해진 색에 대한 취향과 습관이 다시 멀리 돌아 출발선 앞에 서게 하는 것을 전에도 경험했었다.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낸 식물들과 생명들이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색이라는 것에는 중심이 없고 기준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는 점이다. 나보다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 나보다 큰 지 작은 지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를 견주어 결정되고 정확성을 획득하게 된다. 만약에 절대음감처럼 절대색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편리했을까? 한 끝 차이로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경험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컨트롤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다. 여전히 나는 색들의 온도와 질감과 부피 같은 것들을 지독히도 무의식적 감각에 의지해 구현하고 그때마다 색과 색의 관계, 색과 형상의 관계들에 더욱 예민해진다.


나의 집착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더 낯설어 지기를 그러면서 동시에 조화롭기를 바라는 이중적 마음은 늘 나를 경계에 서게 한다.


이 글은 2022년에 있었던 개인전 <8월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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