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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by 에티텔
before sunrise-edit.jpg 이효연, 새벽, 아사에 유채, 60.6x72.7cm, 2025

신작전시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명분을 찾으며 바쁜 날들이었다. 작업실은 그림들이 전시장으로 나가고 약간의 틈이 생겼다. 조금 넓어진 작업실을 기뻐하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전시 끝 무렵 꽃을 선물 받아 작업실엔 꽃향기가 공기에 섞여 상큼하게 느껴지곤 한다.


사람을 만나고 또 사람을 만났다. 매일 조금씩 사람 만나는 일을 반복했다. 아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처음 본 얼굴을 한 사람을 만났다. 아는 이름의 사람들은 나와 그림을 보러 멀리서 찾아왔다. 모르는 얼굴의 사람들은 근처를 지나다 들어와 그림을 보거나 그림을 보다가 질문을 하거나 하였다. 더러 인스타나 블로그에 전시리뷰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전시장 스케치 00 복사.jpg <마콘도> 전시장 모습

공들여 준비한 것도 그렇지만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다가 그 힘이 절정에 달하고 나자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날린다. 에너지들은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감정들은 평안 해진다. 무언가 하나를 끝낸다는 것은 새로운 다른 것을 집어들 용기를 갖는 타이밍이다. 그사이 나는 아쉬웠던 점들이 곳곳에 드러나는 전시를 보면서 다음 전시를 떠올려 본다. 다음엔 이렇게 해야겠다, 이렇게 해야지를 안으로 새겨 넣는다.


이야기는 반복되고 뒤로 갈수록 나는 간절해지고 느슨해진다. 기억을 손에 쥐어 본다. 어느덧 전시가 나를 남겨 두고 끝으로 달려갔다. 이제 전시기간이 모두 지나갔다. 전시는 나에게 무엇을 남기려 하지 않고 스스로 굽이굽이 길을 내고 그 길을 간다. 휑뎅그렁한 장면만 남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Empty.jpg 이효연, 텅 빈, 캔버스네 유채, 112x145.5cm, 2010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객석만 외로운 것은 아니다. 모든 끝을 맞이한 시간에는 헛헛함이 배어 있다. 허전함 쓸쓸함이 텅 비어 버린 마음의 공터에 스민다. 허무는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지점 이후부터 자라나는 뒷마음 이기도 하다. 끝마음, 뒷마음이 감정의 속속들이 스미어 다루기 힘들어지곤 한다. 그만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 받아들일 마음의 참모습 이기도 하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싫어 괜한 고집선 행동을 하는 것처럼 시작하려는 시점을 조금씩 당기며 잠투정을 해본다. 터널을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어쩌면 터널의 입구에 무지개가 드리운 것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터널의 다른 이름이 무지개가 아닐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다시 새로운 손잡이를 쥐고 일 년 후를 떠올려 본다. 작업실에 새로 시작한 그림들이 연기를 뿜으려고 움찔거린다.

끝과 시작.jpg 이효연, 끝과 시작, 아사에 유채, 45.5x53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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