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루틴에게 다가서기

by 에티텔
소녀와 고흐의자.jpg 이효연, 소녀와 고흐의자, 아사에 아크릴, 53x45.5cm, 2015


충분히 울고 난 아이처럼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마찰이 별로 없는 편안한 음악을 틀고 창밖에서 들어오는 낯선 공기가 섞여 숨결이 한결 가벼워진다. 뭇매를 맞은 것도 아닌데 힘이 들었고 깊은 잠을 잤다. 아직은 평소 즐겨 듣던 오디오 북을 들을 마음이 되지 못한다. 파문 하나 일렁이지 않는 고요한 호수 같은 마음이 되어야 좋아하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책의 내용으로 빠져들어갈 수가 있다. 다만 거의 마찰이 없다고 느껴지는 음성은 노래와 함께 들을 수 있다. 금식을 하고 나면 병원에서 죽을 주는 것처럼, 한동안 루틴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난 지금은 그런 이유식 같은 소리만 귀로 넘길 수가 있다.


Study 6-Aleph_oil on linen_91x116.8_2014.jpg 이효연, 습작 6-알레프, 아사에 유채, 91x116.7cm, 2014

예민한 건 소리만이 아니다. 작업도 본작업에 덥석 들어가지지 않아 드로잉을 하거나 평소 안 하던 스타일의 작업을 한다. 루틴이 뭐라고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이리 많은 것들을 예민하게 조율해야 할까.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한다. 그렇게 예민해서 공기도, 소리도, 시각적 자극도 모두 반 템포 천천히 시동을 걸어줘야 한다.

언젠가 한 기획자가 내 그림에 대해 한참을 울고 났는데도 더 울 것이 남아 있는 상태 같다고 말한 걸 기억한다. 그 사람의 정확한 의도는 잊었다 해도 그 말의 밑에 흐르는 어떤 느낌은 기억한다. 왜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울고 난 뒤의 개운함을 떠올리는 걸까.


그것이야 말로 계단을 한걸음 위로 내딛는 신호이기 때문 아닐까? 전시와 함께 한 챕터가 넘어가고 다시 새로운 백지 앞에 서는 것 그것은 한참을 울고 나서 숨을 고르게 쉬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과 닮아서 일거다.

그전에 나는 작업실 청소를 하고, 캔버스를 준비하고 붓과 물감 등을 골고루 챙겨 부족한 것들을 메꿔준다. 하나하나 그냥 되지 않고 모든 걸 최적의 상태로 장전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그것은 무얼 그릴까에 대한 부분이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다른 건 다 뒤로 미루고 바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그것은 지난 전시에서 숙제로 남은 문제를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지의 현기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백지 앞에서 글 쓰는 이가 느끼는 어려움을 호소한 글을 오래전에 읽은 것이 생각난다. 나 또한 빈 캔버스의 팽팽한 공허 앞에서 아찔함을 느낀다.


모든것이 선명해지는 시간_web.jpg 이효연,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시간, 아사에 아크릴, 90.9x72.7cm, 2015

풀기 어려운 큰 문제가 앞에 놓이면 작은 문제를 그 앞에 만들어 그걸 풀며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커다란 산은 커서 오르기 어려우니 작은 산부터 먼저 오르는 마음일까? 나는 아직 그 마음은 헤아려지지 않지만 어딘지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나 잔꾀를 부리며 시동 걸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 오늘도 벌써 오후 5시를 지나고 있다. 루틴에 다가가는 일 그것이 루틴이 되면 안 될 텐데.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끝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