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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함과 융통성

by 에티텔
mosebacke-final-web.jpg 이효연, Mosebacke, 아사에 돌가루와 유채, 145.4x112cm, 2023


홈페이지를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단순한 파일 정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하루 이틀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이며 시작한 일들은 대개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지루하다.


어림잡아도 삼백 점이 넘는 그림들을 앞에 두고 나는 하나씩 날짜를 확인하고, 전시 기록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그림들의 자리를 고민한다. 이런 걸 꼭 내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결국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상한 책임감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림들이 하나의 시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그림이 여러 번 전시되기도 하고, 몇 년 전에 그린 그림이 올해의 전시에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림이 언제 그려졌는지를 기준 삼아 정리했다. 그것은 배운 적 없는 가르침이었고 바로 그 옳은 일이었다.

생각의 진화.jpg 이효연, 생각의 진화, 아사에 유채, 72.7x60.6cm, 2025

그건 내 방식의 정직함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규칙은 지키는 게 맞다고 배웠다. 정직함은 나에게 미덕이 아니라, 일종의 습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내 안의 어떤 질서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 정직함이 나만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그려졌는지 보다 언제 봤는지를 기억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연도가 아니라 장면이고, 작품보다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무시한 채, 그림의 ‘출생연도’에만 집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융통성 없는 완고 함이었다. 어쩌면 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불안의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생겨 홈페이지를 다시 보니, 정직함이라는 이름의 강박이 만들어낸 질서가 눈앞에 펼쳐진다. 연도별로 잘 정리된 항목들. 그 안에 조용히 겹쳐진 전시 제목들. 누군가는 이걸 보고 성실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정돈된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숨이 막힌다. 삶이 너무 반듯하게 접혀 있는 느낌이다. 그림들은 그렇게 평면적인 존재가 아닌데, 나는 그들을 숫자와 칸으로 나눠버렸다.


정직함은 언제 옳은가? 나는 가끔 그 질문 앞에 선다. 삶은 불규칙하고, 감정은 모호하고, 기억은 흐릿한데, 왜 나는 언제나 그 안에서 명확함만을 추구했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정직함이 때때로 나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이다. 지킬 필요가 없었던 것을 굳이 지키며, 더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린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조금 헝클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게 어쩌면 더 진실한 정직함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지금, 아주 느리게, 융통성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중이다. 그건 생각보다 어렵고, 의외로 부드럽다. 덕분에 홈페이지 정리는 더 요원하게 멀어지는 중이다.

가지 않는 길.jpg 이효연, 가지 않은 길, 아사에 유채, 60.6x72.7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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