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랬다. 나로는 안될 것 같을 때 책을 읽는다고 그래서 아주 자주 읽는다고. 나도 나로는 안될 것 같을 때 책을 읽는다. 당연히 자주여야 하나 생업은 자주를 자주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팍팍했던 모양이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있었다. 많이 아팠다. 시간은 별다른 일 없이 흘렀다. 그냥 지나간 줄 알았던 그 일주일이 돌아와 보니 두 배쯤 되는 무게로 쌓여 있었다. 병원에 가기 전부터 이어져 오던 일들. 그리고 비워진 시간. 둘 다 손을 써야 했다.
게으르지 않았지만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건 밀린 고지서와 결제들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사람들과의 연락은 그다음이었다. 피곤했고 자주 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했다.
그래도 이른 아침 작업실 가는 길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걷는 거리. 바깥공기. 낯설고 반가운 풍경. 아프고 나니 그동안 내가 누리던 것들이 머쓱하게 고마워졌다. 밀린 그림들, 미뤄둔 원고, 편집 안 된 영상들. 누구와 약속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나랑 한 약속이었다. 그래서 더 미뤄두기 어려웠다.
거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같은 건물, 같은 사람들. 하지만 그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마치 비닐을 한 겹 씌운 사진처럼. 꿈이 생각났다. 어젯밤 꾼 꿈.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뭔가 계속 놓치고 있다는 느낌만 남아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느낌은 조용히, 온종일 곁에 머물렀다.
다행인 건, 시작해 둔 그림들이 마르고 있었다는 거다. 유화는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일부러 만들긴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원에 있던 시간이 자연스레 그림들에게 여유를 줬다. 마른 그림들은 작업실 곳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네 차례야.” 그런 말들이 그림에서 묻어났다.
오래 앉아 있는 건 힘들었다. 앉아서 일하는 게 생각보다 몸에 무리가 됐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감각들이, 이제는 전부 느껴졌다. 몸속 어딘가가 움직이고, 쉬고, 다시 움직이는 걸 느꼈다. 마치 몸속에 작은 기계가 있고, 내가 그걸 커다란 눈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의 공백은 그대로 빈칸이 되었고, 일주일이라는 파인 홈에 잘 덮개를 씌우는 것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홈과 덮개 사이가 벌어지거나 뜨지 않게 온 힘을 끌어 모아 일상을 향해 나아간다. 하루하루 몸이 부드러워진다. 일들도 자연스러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