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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by 에티텔
DSC07793-2.jpg 이효연, Do Not Play That Music 1, Photopolymer, 2005

빛과 그림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대체로 그런 일들은 이유 없이 시작되고, 이유 없이 계속된다. 빛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둘 사이에는 음영이 있고, 그림자가 생긴다. 그리고 환영이 나타난다. 그림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종종 인생을 그 빛과 그림자에 비유하곤 했다. 내가 본 것들이 모두 오독이라 해도 상관없다. 나의 생각은 늘 그쯤에서 시작된다.


그림자는 실재보다 클 때가 많다. 더 길거나, 더 선명하거나, 때때로는 더 강렬하게 존재를 주장한다. 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살아간다. 언론이나 이야기, 혹은 단순한 소문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이끌리며, 실재하지 않는 어떤 무언가를 믿고 따른다. 명예, 소비, 애정 같은 것들. 그 모든 욕망은 실재보다는 환영에 가깝다. 그리고 그 환영은 대체로 그림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실재를 짐작하지만, 그림자가 놓인 곳은 언제나 제3의 배경이다. 빛도, 사물도 아닌, 그저 그것을 받아내는 무언가. 관심은 늘 외곽을 향하고, 미디어는 그런 관심을 더 멀리, 더 빠르게 밀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경계로 밀려난다. 자신이 중심이 아니란 사실도 모른 채, 하루를 분주히 보낸다.

DSC07786-3.jpg 이효연, Do Not Play That Music 2, Photopolymer, 2005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라는 제목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빛과 그림자의 관계에 몰두하던 어느 날, 나는 길에서 버려진 바비인형 하나를 주웠다. 그 인형은 내 손에 쥐어진 첫 번째 실재였고, 동시에 그림자의 도구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인형을 들고, 카메라를 들어 실기실을 돌아다녔다. 햇빛을 따라,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프레임을 선택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조용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마치 인형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만, 그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그런 상상을 하며 나는 가볍게 웃었다.


행운은 또 있었다. 내가 작업하는 동안 계속 듣던 음악이 있었는데, 그 곡의 제목이 바로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였다. 제목이 나를 이끌었고, 그 제목이 작업 전체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어쩌면 그 제목 덕분에 나는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을 때, 벽에 난 아주 작은 틈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틈을 통해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DSC07804-2.jpg 이효연, Do Not Play That Music 3, Photopolymer, 2005

겨울이 오면, 햇빛은 낮게 기울고 실내는 다시 그림자로 가득 찬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다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언제부터 빛과 그림자에 매료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내게 하나의 방식이 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식물이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듯이.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부족함을 채우고, 세상에 해로운 것을 내보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작업이 즐거운 일은 드물다. 기쁨은 잠시 머무는 감정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고요한 침묵과 싸우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할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엔 웃는다. 그저, 이 일이 내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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