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를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단순한 파일 정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하루 이틀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이며 시작한 일들은 대개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지루하다.
어림잡아도 삼백 점이 넘는 그림들을 앞에 두고 나는 하나씩 날짜를 확인하고, 전시 기록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그림들의 자리를 고민한다. 이런 걸 꼭 내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결국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상한 책임감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림들이 하나의 시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그림이 여러 번 전시되기도 하고, 몇 년 전에 그린 그림이 올해의 전시에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림이 언제 그려졌는지를 기준 삼아 정리했다. 그것은 배운 적 없는 가르침이었고 바로 그 옳은 일이었다.
그건 내 방식의 정직함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규칙은 지키는 게 맞다고 배웠다. 정직함은 나에게 미덕이 아니라, 일종의 습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내 안의 어떤 질서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 정직함이 나만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그려졌는지 보다 언제 봤는지를 기억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연도가 아니라 장면이고, 작품보다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무시한 채, 그림의 ‘출생연도’에만 집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융통성 없는 완고 함이었다. 어쩌면 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불안의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생겨 홈페이지를 다시 보니, 정직함이라는 이름의 강박이 만들어낸 질서가 눈앞에 펼쳐진다. 연도별로 잘 정리된 항목들. 그 안에 조용히 겹쳐진 전시 제목들. 누군가는 이걸 보고 성실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정돈된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숨이 막힌다. 삶이 너무 반듯하게 접혀 있는 느낌이다. 그림들은 그렇게 평면적인 존재가 아닌데, 나는 그들을 숫자와 칸으로 나눠버렸다.
정직함은 언제 옳은가? 나는 가끔 그 질문 앞에 선다. 삶은 불규칙하고, 감정은 모호하고, 기억은 흐릿한데, 왜 나는 언제나 그 안에서 명확함만을 추구했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정직함이 때때로 나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이다. 지킬 필요가 없었던 것을 굳이 지키며, 더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린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조금 헝클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게 어쩌면 더 진실한 정직함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지금, 아주 느리게, 융통성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중이다. 그건 생각보다 어렵고, 의외로 부드럽다. 덕분에 홈페이지 정리는 더 요원하게 멀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