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다빈치 붓을 종류별, 크기별로 잔뜩 구입했다. 값은 만만치 않았지만, 상자를 열자 작은 환호가 먼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새것이 품은 설렘은 곧 무게로 바뀌어, 그림자처럼 마음에 내려앉았다.
붓에도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넓은 숨결로 캔버스를 채우는 붓, 빛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붓, 한 올의 떨림까지 기록하는 붓. 털의 굵기와 힘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품는다. 나는 아직 모든 붓을 다 다뤄본 것은 아니지만, 세필만큼은 오래 곁에 두었다. 털이 몇 올 되지 않아 금세 갈라지고,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쓰기 어렵다. 그럼에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쓰임을 다한 붓은, 어쩐지 나보다 먼저 사라져서는 안 될 것만 같다.
그 집착은 가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1호, 2호 같은 가느다란 둥근 붓이 몽당이가 되면, 그것은 더없이 정직한 별의 도구가 된다. 요즘 내가 이어가고 있는 연작의 이름은 <밤무지개>. 밤하늘에 무지개가 뜬다는 불가능한 상상을 조금이나마 설득력 있게 만들려면, 먼저 수많은 별들이 그 위를 메워야 했다.
몽당붓은 그 일을 해낸다. 마모되어 짧아진 만큼 강직해진 털, 좁아진 만큼 밀도 짙어진 면적. 한때 버려질 뻔한 붓이 별을 낳는다. 붓끝에 묻은 흰 물감은 빛을 찍는 대신, 오히려 어둠을 남긴다. 점 하나, 또 하나. 그 작은 어둠들이 모여 밤이 된다. 별은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먼저 제 자리를 찾는다.
그 별들은 언제나 삐치고, 번지고, 때로는 지워진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때문에 더 진짜처럼 보인다. 빛을 말하지 않고, 대신 어둠을 말하는 별. 그 모자람과 흠결이 이어져 하나의 우주가 된다.
<밤무지개>는 그 우주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몽당붓에서 피어난 풍경, 불완전한 점들이 이어 붙인 밤의 형상. 내가 그리는 밤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러나 그 미완성 덕분에 다시 손을 뻗게 된다. 어쩌면 내가 믿는 것은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시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 시도의 얼굴은 늘 낯설고 서툴지만, 바로 그 서투름이 또 하나의 빛이 된다. 미완의 별처럼, 결코 다 닫히지 않는 하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