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우리는 지난주 만든 새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았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이 가수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선명하다든가, 이 밴드는 한때 명곡을 남기고 그 뒤로는 안일해졌다든가,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근거 없는 평가였지만, 말하지 않으면 도로 위의 공기가 텅 비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늘 조수석에 앉으면 사진을 찍거나, 이정표의 지명에 묶여 있던 기억을 불쑥 꺼내 친구에게 늘어놓곤 한다. 음악이 흐름을 압도하면, 마치 눈치라도 본 듯 우리는 동시에 입을 다물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말이 멈춘 순간조차 음악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그날따라 유난히 느꼈다.
오후 다섯 시, 예보대로 빗줄기가 쏟아졌다. 현실은 그저 비 오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화면에서 보던 설명이 그대로 펼쳐지니, 마치 방송 세트장 속에 들어온 듯했다. 빗소리와 음악이 겹쳐 흐르자, 평범한 노래조차 절창으로 변했다. 앞차의 붉은 브레이크등은 젖은 아스팔트 위로 번져, 물감 한 점이 스르르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차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비가 한 방울도 스며들지 않은 건조한 공기 속에서, 재즈 싱어의 목소리가 울렸다. 질감이란 단어를 쓴다면 그게 딱 맞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빗소리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긁히듯 부각되고, 이내 덮여버렸다. 반복되는 결이 묘하게 긴장을 완화했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불안을 품고 있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음악에 몸을 의탁하며 ‘200년 만의 물폭탄’이라는 수식어조차 무력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터널이 다가왔다. 평소라면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르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빗줄기와 공포로부터 잠시 구해주는 은밀한 안식처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불안했던 날의 터널은 가장 안전한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내가 느낀 건 단순한 터널이 아니라, 내 삶을 대신 운전해 주던 어떤 손길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