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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서열

by 에티텔
노랑이 물든 초록 풍경.jpg 이효연, 노랑이 물든 초록 풍경, 아사에 유채, 90.9x65.1cm, 2025

녹색에는
녹색만의 서열이 있는 줄 알았다


연두에서 초록,
그리고 청록으로
미끄러지는 선


밝고 어두움은
언제나 바른 순서가 아니다
작은 떨림에도
세상의 위아래가 바뀐다


검정이 금빛을 품고
은빛이 흰색을 감싼다


익숙한 길은 무뎌지고
낯선 길은 눈부시다


근사한 것을 좇다
가장 낮은 층에서 숨을 고르면
머리 위의 그림자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의 상상일 뿐


가까운 길조차
주름의 안쪽은 알 수 없고
작은 턱에도
우리는 쉽게 걸려 넘어진다


익숙한 먼지 속에서만
윤곽은 드러난다


앞은 선명하고
뒤는 흐릿하다는 말들,
그 모든 지침은
엉성한 껍질이 되었다


알에서 나가려면
껍질을 깨야 한다
가벼운 껍질일수록
오래 걸린다


위계는 한 줄이 아니다
겹치고 밀리며
질서 없이
맥박처럼 어긋난다


그리고 오늘,
혼돈은
질서의 또 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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