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압이 약했다.
낡은 수도꼭지에서 물은 실처럼 흘렀다.
싱크대 모서리에 거품이 남았다.
하루가,
헹구다 만 접시처럼 거기 걸려 있었다.
아몬드 하나.
텁텁한 맛이 입천장에 달라붙었다.
관리인은 고개를 저었고
아랫집 노인은 계단을 올라왔다.
벽 너머 뚝딱.
잠시 후
파이프에서 터져 나온 물은 붉었다.
관이 제 속을 비워내듯.
달력엔 결제일이 붉게 그어져 있었다.
나는 어렵게 문자를 보냈다.
경쾌한 답장이 돌아왔다.
일은 아무렇지 않게 풀렸다.
좁은 바, 네 잔 째 에스프레소.
친구의 웃음은 흩어지고
골목 진열대 위
무화과와 치즈가 눈을 스쳤다.
돌아와 양치해도
아몬드 조각은 이 사이에 남아 있었다.
수돗물은 여전히 붉었다.
이내, 맑아졌다.
힘겹게 꺼낸 두 마디 말.
목구멍에 걸린 숙제처럼 매달리다
물살에 씻겨 내려갔다.
붉은 흔적이 가라앉는다.
나는 새 아몬드를 입에 넣는다.
이번에는 향긋했다.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내 안의 불안이 조금씩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