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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손잡이

by 에티텔
손잡이 없는 문들의 풍경01_web.jpg 이효연, 손잡이 없는 문들의 풍경 1, 아사에유채, 31.8x31.8cm, 2020

올 가을과 겨울에 예정된 전시를 위해 작업 중인 신작이 열 점을 훨씬 넘고 있다. 전시가 가까워진다는 건, 마음이 조금 더 불안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중 가을 개인전은 아직 제목이 없다. 정해둔 방향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래 왔다. 그리는 동안, 그 무언가는 천천히 방향을 바꾸고, 내가 처음 품었던 생각과는 다른 어딘가에 도착하곤 했다.


모처럼 오래된 라디오 녹음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시인의 목소리였다. 낮고 단단한 말투로 그는 어떤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대화의 손잡이라고

그 순간, 나는 붓을 내려두고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가끔 어떤 말들은 나를 멈추게 한다. 그 말이 그랬다. 게스트로 나온 시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수업시간 전에 대화를 미리 준비해 두면, 정작 대화는 그걸 뺀 나머지로 흘러간다고도 했다. 생각해 둔 말들은 손잡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손잡이는, 문을 열게 한다. 그 자체로는 크지 않지만 그 없이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는 지나간다. 어쩌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손잡이만 조용히 남는다. 그 생각이 오래 남았다.

이번 전시가 그런 전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열어주는 시작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문을 열고 나아가는 방향과 문고리의 방향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펼쳐진 다음 세상은 오롯이 길을 가는 이의 몫이다.


요즘은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 석양도 그린다. 색은 선명한데, 감정은 뿌연 그런 장면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있다. 요즘 부쩍 그리움을 떠올리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마음이다.


그리움은 설명할 수 없다. 누구나 안다고 말하지만 막상 말로 하려 하면 흐려진다. 그게 오히려 좋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면.


전시장을 나서며 누군가가 '그림이 머릿속에 자꾸만 생각이 날 것 같다'라고 말해준다면 그 말 한마디면 기쁠 것이다. 그림이 아니라 그림 바깥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일이다.


나는 오늘도 손잡이 하나를 더 그리고 있다.
누군가 아주 조용히 마음을 열고
자신만의 풍경을 지나갈 수 있도록.

손잡이없는 문들의 풍경_web.jpg 이효연, 픽토하이쿠-손잡이 없는 문들의 풍경, 아사에 유채, 120x120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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