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 별일 없이 공부하는 날
준이(몬스테라, ‘꾸준히’에서 따온 이름)는 정말 잘 자라고 있다. 이러다 내 방이 정글이 될 거 같다(오히려 좋아.). 일주일에 한 번 물을 갈아주고 바라만 봐주는데도 알아서 잘 크다니. 기특한 녀석. 준이의 잎이 하트 모양이어서 더 예쁘다. 시험 때까지 나랑 같이 살다가 시험 끝나고 큰 집(본가)으로 이사하자~
갑자기 로스쿨 시절의 일화가 생각났다.
정말 잘 가르치시는(유일무이한)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원장님이 한 말씀이 상위권 애들만 끌고 가라는 거였어. 나머지는 어차피 해도 안된다고 버리라고. 근데 나는 그렇게 못해. 나는 그 누구의 손도 놓지 않을 거니까 너희들이 내 손을 먼저 놓지 말고 끝까지 해.’라고.
나는 앞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눈물이 날 뻔하다가 원장이 그딴 말을 했다는 것에 분노했다.. ㅋㅋㅋ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출신대학과 성적으로 학생을 차별하던 사람이라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공부만 하다가 인간성이 실종된 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
내 평생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므로 내 감정을 그 사람에게 쓸 이유가 없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다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의 로스쿨에 들어갔으면 합격했을까? 하는(그런 분위기의 로스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이미 지난 일은 묻어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나는 좀 더 타인의 말을 그냥 넘길 수 있는 에너지를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엄마는 종종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합격하기 위해서는 그거 하나 못해주겠니?’
(나를 숨 막히게 하는 말)
‘이번 모의고사에서 객관식을 무조건 올려봐.’
(나를 더 숨 막히게 하는 말)
그런데 또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도 하신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객관식을 못하는 것, 계속 불합격하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시는거 같다. 엄마의 기준에서 나는 아직도 중학생 시절 공부 잘하던 똘똘한 딸내미에 머물러 있는거 같다.
‘그러려니~’하고 넘길 수 있는 힘이 아직은 없다.
오늘은 어제보다 살짝 덥다.
나는 오늘도 도림천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