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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하는 거 아무 생각 없이 GO!

10/30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나여도 괜찮아

by 오뚝이


인턴으로 일했던 ‘공익법센터 어필’.


며칠 전, 학원에서 공지 문자가 왔다.

새로운 강사 두 명을 영입했다는 소식이었다.

둘 다 고시판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 둘은 내년부터 정식으로 합류할 예정이므로 올해를 마지막으로 고시판을 영원히 떠나게 되는 나는 그들의 수업을 들을 일이 없지만 그 문자를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변시 재수학원의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전국에 25개의 로스쿨이 있는데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원의 역사나 교수진이나 학원이 자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합격률로 보면 거의 26번째 로스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어쩌다 이 바닥은 이렇게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일까. 몇몇 극소수의 로스쿨을 제외하면 합격률이 절반이 안 되는 곳이 허다하다.


인턴으로 일했던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 붙어있던 글귀


오늘도 어김없이 기운 빠진 채로 객관식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는데 반가운 연락이 왔다.


내가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인턴으로 일했던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만난 변호사님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나는 그녀를 ‘호사님’이라고 부른다.) 호사님과 나 모두 얼른 시험이 끝나서 만나서 수다를 떨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힘나게 했다. 신기하게 갑자기 없던 기운이 솟아났다.


호사님은 로스쿨을 졸업하자마자 어필에서 일하시기 시작해서 오랜 시간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을 조력하는 일을 하시다가 최근에 젠더 폭력의 피해 여성만을 조력하는 로펌에 입사하셔서 일하고 계시다.


어필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그곳에서는 모두 이름이나 별명으로 불리고 변호사와 인턴이 동등하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일했던 곳이다. 이렇게 일하는 곳도 있구나, 이렇게 일할 수도 있구나 싶었던 곳.

원래 1달만 일하는 것으로 들어갔다가 연장해서 총 8개월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지금은 경복궁역에서 명동으로 이사했다. 새로운 사무실에는 아직 못 가봤는데 기회가 되면 놀러가고 싶다.


호사님께서는 로스쿨을 나오셔서 나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신기하게 성격도 잘 맞아서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그냥 관성처럼 일어나서 공부를 하고 밥을 먹던 나의 일상에 호사님으로부터의 한 번의 연락으로 따뜻한 숨결이 불어넣어 진 거 같아 신기하다.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다.

두 달하고 며칠만 더 보내고 나면 내가 더 하고 싶어도 이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이 온다.


자기 연민에 빠진 괴물로 변해버리기 전에 그만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당장 이번 주 토요일부터 기록 모의고사가 시작되고 11월에는 파이널 일정으로 매일매일 시험을 보고 강평을 듣고 특강을 듣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이미 겪어본 일이고 이제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시간이니 너무 힘들다고, 짜증 난다고, 못하겠다고 죽는소리하지 말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거슬려하지 말고 그러려니 넘기고(사실 극 예민한 기간을 보내고 있는 내겐 좋은 말도 고깝게 들릴 때가 있다ㅠㅠ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는 자기검열을 멈추자. 수험생이 예민한건 당연한 거다..) 매일 벅차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묵묵히 그 시간들을 버텨내고 싶다.


나 자신과의 싸움을 잘 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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