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

적정한 선에서 평화를 유지한다.

by 춘춘

십 년 전이었다면, 아니 오 년 전만 되더라도,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자라온 환경 안으로 들어가 그 가족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남이었던 사람들을 갑자기 부모로 대접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람이 한번 재 구성되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변화이고 때에 따라서는 고통일 수 있다.


낯선 사람들과 가족이 되기 위해서 누구나 통과 의례를 겪어야 하듯이 나도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한동안은 더 행복해 지기 위해 결혼한 것인데 의미 없는 괴로움을 겪는 것이 납득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가족은 그 사람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완벽하게 내 가족만큼 사랑할 수는 없지만 얽힌 인연 안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이성적인 설명으로는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미묘한 관계이다.

친한 친구가 감기 몸살에만 걸려도 마음이 쓰여 뭘 좀 도와 줘야 할 것 같은데, 시어머니가 편찮으실 때는 생판 남에게도 나눠주는 측은 지심이 그만큼 우러나지 못하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섞인다.

어떤 날은 미운 마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마주 보며 즐겁게 웃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복잡한 관계는 세월이 지나면서 고쳐지고, 또 고쳐지지 않는 것들은 그대로 놓아둔 채로 어느정도 괜찮을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시어머니의 요리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우리집 음식이 아니라서 낯설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이상스러워서 어디 가서 말하면 백 퍼센트 믿지도 않을 음식들을 만들고 먹는 괴로움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음식이 유난히 고단한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스트레스를 풀 겸 장난 삼아 한두 번 쓰려고 했는데 좀 쓰다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혼자 피식 웃음도 나오며 묵은 감정들이 해소되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어머니의 기발한 음식이 가끔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안하셨으면 좋겠다.)


오래된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서 어머니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원망스럽기만 하던 마음도 글로 적어내다 보니 결이 고와졌다. 서운했던 기억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히던 분노의 정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어머니와의 관계는 평생 이어질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의 성격이 완전히 변하지는 않을 테니, 또 속이 상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일들은 계속 생길 것이다.

어차피 그 일들을 가족 간에 피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충돌이다. 잘 겪어내자.

글을 썼던 이 기억이 그 복닥거리는 삶의 나날에 작은 숨구멍이 되어줄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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