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빗줄기가 설악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나의 온몸에도 흘러내린다
바들바들 더운 여름이라지만 온몸이 불덩이다 그래도 기다린다 기다려야 한다
"아이고, 학생 왜 비 맞고 서 있어. 어서 내려가. 비 한참 올 텐데."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감사의 미소만 건네고, 1시간 2시간
설악산에 불이 나면,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난다면 나 때문이라고
몸에 있는 모든 열을 내뿜으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어디선가 들리는 웃음소리 깔깔깔
나는 발간 얼굴을 들어 소리가 내려오는 곳을 바라본다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칼바람이 되어 나를 스치고 하산한다
힘이 풀린 다리는 마지막 힘을 다해 산의 기운을 받아 뒤따른다
멀어져 가는 웃음소리 희미해지는 하나의 네 걸음
그렇게 산은 자신을 지키고 맨 땅 위엔 덩그러니 불덩이 하나
터덜터덜 약의 기운도 아닌 이것은 무슨 기운일까 무사히 돌아가야 한다는 생존본능일까
하지만 오류를 범하고 그 오류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또다시 덩그러니 하늘은 잠시 비를 거두고 이 상황을 지켜본다
내게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블랙홀
어쩌면 이 몸뚱이는 마른 팔다리를 지닌 초라한 나무로 낯선 이곳에서 썩어가는 건 아닐까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선명한 땅의 울림
누더기를 입은 존재는 천사일까 신분을 숨긴 악마일까
그림자로 그의 발길을 막아 선채로 두 손을 내민다
"그대가 지닌 하늘이 있다면, 한 조각만 내어 줄 수 있소?"
그 눈동자, 그 눈동자는 천상계
그의 까만 손은 깜깜한 우주를 휘저으며 별 하나를 찾아 헤맨다
왠지 모를 안정을 찾은 나의 눈도 그와 함께 동행한다
어느 별에서 얻은 것일까 그는 꼬깃꼬깃 뭉쳐진 하늘 조각을 꺼낸다
천사는, 지상에서 힘들었을 그 천사는 자신에게 하나 남은 하늘 조각을 건넨 건지도 모르겠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 그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며 고개를 땅에 몇 번이고 떨군다
손에 작은 하늘을 쥔 채로
되돌아가는 길은 갑작스러운 매서운 바람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고
결국 하얀 이불에 영혼은 피를 철철 흘리고 만다
그날 밤 달과 별들은 이불을 걷어차고 밤놀이하러 나왔을까
너무도 검붉었던 그날 밤의 기억
조금 달려온 인생에서 처음 맛본 찢긴 마음
그리고 천사와의 조우
설악산 언저리에서의 회색빛 천사는 또 다른 자신의 하늘 조각을 찾았을까